나무로 만들어진 운치 있는 간판이 2차선 작은 도로 변에 나타났다. ‘평화 마을’이란 글자가 흰색 페인트로 예쁘게 쓰여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아담한 집들이 나란히 정렬된 모습이 보였다.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창가와 현관들이 인상적이었다. 야트막한 담은 물론이고 이웃과의 경계를 표시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넓게 트인 푸른 잔디 정원이 시원함까지 주는 그림 같은 마을이었다. '햇살 좋은 봄날, 자그마한 경차를 앞세운 그다지 크지 않은 이삿짐 트럭이 조심조심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똑같이 생긴 갈색 지붕의 예쁜 단층집이 두 채 나란히 보이자 수연은 서둘러 차를 멈추고 뒤따라오는 운전기사에게 알렸다.'“기사님! 여기서 세워 주세요. 바로 요 앞집이에요!”'기사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서는 기지개를 켰다. 장시간 운전한 터라 몸이 뻐근한 모양이었다. 서울서 전날 싸놓고 새벽에 출발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수연은 뒷좌석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 지훈을 잠시 돌아본 뒤 차에서 내려섰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그녀는 환한 얼굴로 크게 숨을 들이켰다. 달달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이름 그대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녀는 이제 여덟 살인 아들 지훈이 공놀이며 야구 놀이를 마음껏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잔디밭을 흡족한 눈으로 둘러보았다.'“짐을 날라야죠.”'기사와 함께 온 사내가 목장갑에 손을 끼워 넣으며 묻자, 수연은 급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네, 잠깐만요! 금세 열어 드릴게요.”'이삿짐센터의 두 사내가 그녀의 이삿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손때 묻고 보잘것없는 살림살이였지만 그녀에겐 그 모든 것이 소중할 뿐이었다.'짐이 들어갈수록 정원에는 신문지니 박스니 하는 것들로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가스 연결해 달라고 전화하세요. 렌지 제 위치에 뒀으니까요.”'기사의 말에 수연은 핸드폰을 들었다가 그만 난감해졌다.'“잠깐, 어디에 연락해야 하지?”'이런 작은 마을에 도시가스가 연결되었을 리 없지 싶었다. 그녀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 때 언제 일어났는지 지훈이 저보다 큰 여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여자 아이는 지훈보다는 몇 살쯤 더 나이가 많아 보였고 키도 상당히 컸다.'“안녕!”'수연이 인사하자 눈이 유난히 커다란 여자 아이가 환한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안녕하세요, 아줌마!”'수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지훈을 내려다보았다.'“언제 일어났니?”'“조금 전에. 엄마! 이 누나 바로 옆집에 산대요. 나보다 세 살이나 많아요!”'“오! 그래? 우리 지훈이보다 세 살이나 많은 누나는 이름이 뭘까?”'수연은 다시 여자 애를 쳐다보며 말했다.'“지민이에요. 김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