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엄마. 촌스럽게 누가 입학식에 엄마랑 같이 가. 나 그냥 혼자 갈게. 내가 애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집에 계세요.”'성기는 입학식 선물로 큰누나에게 받은 옷을 꺼내 입고 왁스로 머리까지 매만지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려다 그만 필순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누가 니 아라카나? 이 엄마가 가고 싶어서 그라는데. 누야들 입학식에도 엄마 다 갔다 아이가.”'“그래서 누나들도 창피했다던데?”'물론 엄마의 사랑이야 감사하지만 성기는 이런 날만은 엄마의 넘치는 사랑을 사양하고 싶었다. 다른 것보다 서울서 터 잡고 산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사투리를 고치지 못한 엄마의 거친 말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특히 또래들이 많은 곳에서는 솔직히 창피하기도 했다. '“뭐라꼬? 너그들 인자 엄마가 가는 거 챙피시럽다꼬 그라나? 엄마가 할망구처럼 보일까 봐서?”'필순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성기로서는 피할 길이 없었다. '‘누가 촌스럽게 입학식에 가서 앉아 있냐고. 대충 그 근처 배회하다 선배 만나고 동기들하고 인사하고 그런 거지. 하, 미치겠네. 진짜 거기 가서 또 멍하니 서 있어야 돼?’'필순은 그저 하나뿐인 아들 성기가 세상에 제일가는 착한 아들인 줄 알지만 실상 성기는 그저 평범한 또래와 다르지 않았다. 문제집 산다고 하고선 그 돈 가지고 그 길로 미팅에 나가기도 했고, 수업 하루 빠지고 친구들과 놀이 공원에 간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모범생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그였다. 하다못해 월요일 전체 조회 시간 교장선생님 말씀조차 언제나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그가 입학식이라고 참석할 리가 없었다. '“아, 누가 엄마가 늙었대? 내 또래 엄마들 다 엄마 같지.”'물론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성기가 막내인데다 큰누나랑 무려 열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 터라 친구 엄마들이 대략 쉰 전후인데 반해 필순은 무려 올해 예순이었다. 물론 성기도 가끔은 엄마가 좀 젊었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이 상황에 그런 말을 꺼낼 정도로 철이 없진 않았다. '“아이다. 내 요새 몸이 좀 불어서 그란가 아무래도 니가 창피한 모양이다. 미안타. 엄마가 돼서 니 맴도 모리고…….”'필순이 울먹이자마자 이내 병팔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해갔다. 한때 취미로 권투에 매진했던 병팔에게 한 대 스치기만 해도 최소 전치 4주는 나올 정도이니 병팔의 표정 변화에 성기는 바짝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아, 큰일 났다. 아빠 화났다.’'세상 어느 것 하나 무서운 게 없는 성기지만 그런 성기가 세상에서 단 하나 무서워하는 사람이 바로 병팔이었다. 5대 독자라고 벌벌 떠는 필순과 달리 병팔은 사내자식은 험하게 키워야 한다며 틈만 나면 그를 막 굴리곤 했다. 밤마다 한 시간 이상씩 운동을 시키는 건 물론이요, 무전여행도 가 봐야 한다며 무작정 방학에 그에게 가방 하나 던져 주며 일주일 뒤에 오라고 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때마다 필순이 그런 병팔을 말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지금쯤 성기는 이 곱상한 얼굴, 이 고운 피부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