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로 기억한다. 드럼의 소리가 강렬하게 들리면서 화면에는 우주의 곳곳이 보이고, 겹치고, 유리가 깨져 하늘을 뒤덮기까지 했다. 그리고 실로폰 음인지, 아니면 기계음인지는 모르지만 ‘띵띵’거리는 멜로디가 잠시 울리고 나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까지 하얀 구름이 가득 찬 허공. 그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는 흑인의 남자. '환상특급 [The Twilight zone]이라는 인트로가 지나가고 나면 비로소 시작되던 미국 드라마를 일요일 아침이면 겨우 눈을 뜨고 거실에 나와서 누나와 함께 소파에 나란히 누워 보곤 했었다. 내용들이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드라마는 결말을 예측할 듯, 말 듯 이상한 분위기로 늘 이야기를 얼렁뚱땅 끝맺었다. '내가 누나에게 ‘그래서, 저게 뭐 어쨌는데?’라고 물으면 누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글쎄, 이게 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 아니겠어?”하고 의젓하게 대답을 해주곤 했다. 어릴 때야 5살의 나이 차이가 엄청나게 큰 차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누나 역시 어릴 때인데, 어쩜 그렇게 어른스럽게 대답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현실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제목처럼 환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 같기도 하고. 그런 모호한 주제의 드라마를 우린 정말 진지하게 봤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다.'내가 지금 제정신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사는 우주, 내가 살던 지구, 그리고 내가 살던 집…….''갑자기 모든 게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엉켰는지 매듭을 찾을 수가 없다. 매듭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실마리가 될 만한, 매듭을 풀 만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내가 잠자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4차원의 세계에 던져버린 것처럼, 난 지금 세상에 대해 무척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 배신감의 시작을 찾자면 거슬러 오르고 올라서 석 달 전, 관내 수입 가구점에 불이 났을 때부터였다. '망할 동기인 준형은 하필이면 그때 갑작스레 당직을 바꿔달라고 해서 날 이렇게 꼬이게 만들었나 싶다. '난, 내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하찮은 원목의 가구들보다, 눈에 제대로 띄지 않는 서류파일들보다 가스에 질식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창고지기의 목숨을 먼저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게 아무리 고가의 사치품이라고 해도 내게는 불길에 놓인 휘발유처럼 필요악으로만 보일뿐, 어떤 것이라도 창고지기의 목숨보다 값진 것은 아니었다.'원칙을 따지고, 순서를 따져 모든 일을 행해야 한다는 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이야기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또한 예외도 있는 법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