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서는 감각조차 사라져버린 자신의 차가운 손을 비비며 골목 안으로 들어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오늘은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오랫동안 서 있을 뿐이었다.'오늘도 어제처럼 돌아서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손 안에 들려 있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수십 통을 걸어 보아도 전원이 꺼져 있는 그의 전화기에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지만 이젠 너무나 익숙해 손가락마저 외워버린 번호를 누르며 차가워진 핸드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여전히 그의 핸드폰에선 그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서는 자신의 음성을 남기고 있었다.'“오빠……오빠 곁엔 내가 있잖아. 그러니까 제발 돌아와.”'그의 어머님 발인이 지난 후로 주호와는 아무런 연락이 되지 않아 윤서는 그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신 분께 모질게 했던 지난날을 후회의 눈물로 보내고 싶어 할 거란 걸 알기에 윤서는 연락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 그를 이해하며 곧 돌아올 거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강한 사람이니까 누구에게도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거라고, 그 누구에게도 고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거라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고 있었다.'그러나 그의 어머님 장례식장에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사람들의 방문을 떠올리는 윤서의 두 눈 속엔 불안감이 가득했다. 이미 빠르게 퍼져버린 소문들처럼 강주호가 강원일 회장의 숨겨둔 아들이라는 말이 사실일 거란 생각으로 가슴 안에 들어차는 초조함을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믿고 있었던 그의 아버지에 대한 진실이 소문처럼 사실이라면 지금 그에겐 지독한 고통일 것이며 밀어내고 싶은 현실일 것이다. '그러한 사실들로 인해 윤서는 강주호 그가 차라리 힘들다고 말할 줄 아는 남자였다면 좋았겠다고 바라고 싶었다. '어쩌면 오늘도 이대로 돌아서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체념의 한숨이 윤서의 떨리는 입술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이대로 돌아서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온몸은 차가움으로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고 두 눈이 자꾸만 감겨와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내일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수십 번 되뇌며 어렵게 걸음을 옮기려던 윤서는 그 순간 골목 입구로 들어서는 낯익은 모습을 발견하곤 급하게 돌아섰다.'가로등 불빛에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며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자신의 두 눈 안에 가득 들어오자마자, 윤서는 숨을 죽여야만 했다. 그녀의 온 가슴을 차지하고도 늘 외로운 그림자를 만들어 놓는 남자 강주호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오빠!”'윤서의 떨리는 음성이 그의 귓가에 닿고서야 긴 폭의 걸음을 멈춘 주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난히 까만 주호의 눈동자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도 낯섦이 느껴질 정도로 차갑게 느껴졌지만 윤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두 손으로 주호의 귀를 감싸주었다. 자신의 작은 손이 더욱 차갑다는 것도 모르고 발꿈치를 높이 들어 올려 주호의 귀를 만져주었다.'“오빠, 감기 들잖아. 눈 맞고 다니면 감기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