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욕조는 은은한 향내로 가득했다. 유현의 말로는 심신을 편안히 가라앉혀주는 향유라더니, 과연 그 효과가 제법이었다. 몇 번이고 그 기분 좋은 향기를 음미하던 연은 수영과 유영을 돌아보았다. '“이제 그만 나가셔도 됩니다. 나머지는 제 스스로 할 테니, 가서 쉬세요.”'“알겠습니다, 마마.”'몸을 씻는 것쯤이야 그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터인데, 공연스레 저들에게 수고를 끼칠 필요는 없었다. 입고 있던 엷은 속옷마저 벗어낸 연은 욕조에 깊숙이 잠겨들었다. 뜨뜻한 온기가 숨김없이 전신을 감싸면서, 나른한 감각이 번져갔다. '그녀는 가냘픈 어깨에 물을 끼얹으며 제 몸을 문질렀다. 전에 없이 잔뜩 도드라진 가슴선이, 뾰족하게 달아오른 유두가 눈에 띄었다. 연은 가만히 얼굴을 붉히며 눈을 돌렸다. '사내를 알아버린 여인이기 때문일까. 그녀의 몸은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참이었다. 깊은 굴곡을 그리는 허리, 다리 사이의 은밀한 계곡, 그리고…… 이전보다 제법 커진 가슴. 하기야, 그가 매일같이 품고 만지는 참인데 변하지 않는다면 그게 또 이상할 터였다. 그녀는 차분히 입술을 뗐다.'“다 감상하셨으면, 그만 비켜주시겠습니까.”'“거참, 귀신같이 알아채는군. 대체 어떻게 안 거지?”'연은 어느 틈에 욕실에 들어와 있는 그 사내, 천운을 돌아보았다. 인기척 한 번 느끼지 못했건만, 언제 들어온 것일까.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전하께서는 잘 모르실 테지만, 입고 계신 옷이나 몸에서 특유의 냄새가 맡아지더군요. 아마, 제 짐작으로는 어의에 뿌려진 초향(椒香)이 아닐까 싶습니다만.”'왕의 옷을 보다 오래 가게 하며, 그 질을 최상품으로 유지하기 위한 초향. 그것은 연이 기억하는 천운의 체취 중 하나였고, 이 대연국에서 유일하게 그만이 품고 있는 향기이기도 했다. 천운은 무슨 여자가 저렇듯 예민하냐며 중얼거렸지만, 연은 못 들은 척 돌아앉았다. '“그만 나가주세요. 곧 씻고 나가겠습니다.” '“이미 볼 것 다 보았는데 뭘 나가? 꽤나 섭섭한 소리군.”'성큼성큼, 욕조 옆으로 다가온 천운은 보란 듯이 팔짱을 꼈다. 물속에 잠긴 그녀의 몸을 빤히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꽤나 야릇했다. 연은 뜨거운 눈빛이 낱낱이 온몸을 훑자 눈에 띄게 움찔했다. 그녀를 품고 있을 때의 열기를 그대로 담은 채 연을 응시하는 시선. 갑자기 다리 사이가 움찔거리면서, 심장이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 안이 바짝 마르는 듯한 느낌에 숨을 삼켰다. '“그렇게…… 보지 마셨으면 합니다.”'“내가 뭘? 난 그저 쳐다만 보았을 뿐인데,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이제 천운은 연의 얼굴에 바짝 다가붙은 채 속삭이고 있었다. 능글맞은 모양새가, 뱃속에 구렁이 열댓 마리는 들어있는 것만 같다고나 할까. 그는 입술로 그녀의 목덜미를 건드릴 듯 말 듯 더듬었고, 슬쩍 혀끝으로 귓불을 핥기까지 했다. 뱃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미는 것을 느낀 순간, 연은 더 참지 못하고 그의 옷자락을 잡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