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불어오는 바람에는 습윤한 한기가 가득했다. '사방에 짙게 내리깔린 어둠, 그것은 여인에게 차라리 축복이요 한줄기 위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품에 안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그녀는 이미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머지않아 세상 한가운데에 내던져질 아이의 운명을, 그녀의 가슴 속에 평생토록 휘몰아칠 죄책감을. '오래도록 사용되지 않은 비밀 통로는 차갑고도 음습했다. 분명 태왕 때에는 통로 내에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도록 불을 밝혀놓았다 하였건만, 지금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여인은 들고 있던 등잔 하나에 의지하여 발걸음을 움직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 밤이 흐르기 전에 단해(斷海)에 가야만 했다. '“헉, 헉…….”'비단옷자락은 거친 돌바닥을 스치는 사이 잔뜩 찢겨졌으며, 맨발이나 다를 바 없던 여인의 발은 금세 엉망이 되었다. 가냘프기만 했던 숨결은 시간이 흐를수록 숨 가쁘게 차올랐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이 급박하게 흔들렸다. 잠시 멈추고 숨 돌린 연후에 발길을 재촉해야 마땅하련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미친 듯이 고동치는 심장의 움직임이, 헐떡이는 그녀 자신의 숨결이 느껴졌지만 여인은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릴 수만 있다면. 이 아이와 그녀, 모다 한자리에서 죽어질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여인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비밀 통로를 빠져나오자마자 여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허름한 장포로 온몸을 감싼 것이었다. 가뜩이나 잔뜩 헝클어져 있던 머리칼, 산후의 고통으로 발갛게 상기된 얼굴은 추레한 천 조각이 더해지자 여인의 신분을 감춰주기에 충분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여인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익……!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느닷없이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말 한 마리가 여인을 향해 달려 나왔다. 야생에서 자란 말이로되 사람에게 길들여진 것이 분명한 말은, 여인 앞에 나붓이 몸을 숙였다. 능숙한 솜씨로 말 위에 오른 그녀는 다급히 말의 잔등을 후려쳤다. '“어서 가자. 시간이 없어, 빨리……!”'여인은 매섭게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거친 움직임에 잠이 깬 듯, 품안에서 아이가 칭얼거리며 몸부림쳤다. 제발, 울지 마……! 그녀는 소리 없이 절규하며 미친 듯이 말을 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이 아이를 그녀에게서 멀리 떼어놔야만 했다. 그녀가 평생토록 갈 수 없으며 단 한 번조차 우연처럼 만나질 수 없는 곳, 그런 곳이어야 했다. '대연국과 이사국의 국경 아닌 국경, 단해는 이때가 늘 그러하듯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말에서 내린 여인은 주춤거리며 어둠 속에 숨어들었고,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사방 가득한 흥겨운 웃음소리, 각국에서 몰려든 상인과 구경꾼들, 그리고…… 곳곳에 펼쳐진 좌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