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해를 사는 동안 별다른 굴곡 없이 천하태평으로 살았던 오스칼에게 드디어 잿빛 흐린 날의 서막이 올랐다. 이유인 즉, 대학 졸업 이후 쭉 한결같은 딸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부모님의 불호령이 끝내 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취직을 해 한 달 안에 독립을 마치라는 엄포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서른이 된 딸자식을 여태 끼고 살면서 받았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란 건 칼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부모님을 전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딸에게 선전포고를 할 수는 없는 거였다.'취직은 어떻게 한다 하더라도 독립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되었다.'독립을 하기 위해선 지하 단칸방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지하 단칸방이라도 얻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녀의 수중에는 단돈 몇 천원과 책상 밑에 굴러다니는 십 원짜리 몇 개가 전부였다. 제아무리 쥐어짜 봐도 가지고 있는 돈은 만 원이 넘질 못했다. 그런 자신에게 독립을 하라니 이건 정말 아니지 싶었다. 그럼에도 한마디 따질 수 없는 현실의 처절함을 알기에 그녀는 최후의 수단인 생활정보지를 뒤적이기에 여념이 없었다.'도저히 답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딸인데 취직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독립만은 어떻게 구제해 주진 않을까 하는 부푼 기대를 안고 칼은 희망의 끈인 신문을 넘겼다.'그런데 문제는 이것저것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정보지를 들추어 봐도 자신이 할 일은 없다는 거였다. 좀 괜찮다 싶으면 집과 너무 멀어 출퇴근이 불편하고,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싶으면 월급이 너무 야박하고, 다른 건 몰라도 미모 하나는 뒤지지 않은 외모를 내세워 얼굴 팔 생각을 하면 부모님이 뒤로 자빠져 돌아가시기 딱 좋은 직업만 눈에 들어오는 등 여간해서는 눈에 차는 일이 없었다.'“도대체가 맘에 드는 일이 없어.”'그렇게 정보지 여기저기 빨간색 사인펜으로 그린 X자는 점점 더 난무해져갔다. 이 정보지에선 더 이상 얻을 게 없구나 생각한 채 마지막 장을 넘기고 접어버리려던 순간 그녀의 눈에 광채를 번쩍이며 들어오는 구인광고 문구가 있었다. 반듯하게 네모박스까지 만들어 신문 한 면을 꽉 채운 구인광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눈에 띄었다.'시선을 사로잡은 광고 글을 그냥 모른 척할 수 없는 법. 칼은 신문을 접으려는 모션을 다시 원상복구시켰다. '시선을 끈 것과 달리 [가정보모를 구합니다.]란 문구로 시작된 광고는 별 흥미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것도 자신의 일이 아니다란 생각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또 한 번 신문에서 광채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