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점심식사를 할 시간에 채유는 눈을 떴다. 반쯤 올라간 눈꺼풀 사이로 오랜 시간 숨어 있던 동공이 나타났다. 분명히 해가 떠 있는 데도 그녀의 방 안은 어두웠다. 새까맣고 두꺼운 긴 커튼이 햇빛을 완벽하게 차단해주고 있었다. 커튼은 마치 한줄기 빛이라도 새어 들어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모양새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또 깨버렸네…….”' 자칫 위험성이 느껴질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녀가 위험한 말을 내뱉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에서 깨어버린 것이 아무래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녀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집안에는 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방 안과 거실은 무뚝뚝한 까만 커튼이 빛을 가려주고 있었고, 불을 켤 수 있는 수단인 스위치에는 플라스틱 막이 씌워져 있었다. 아담하다고는 말 할 수 없는 집안 인테리어는 모두 검정색으로 되어 있었다. 컬러풀한 물건은 고사하고 원목 가구조차 없었다. 진정한 암흑세계를 보여주려는 듯 채유의 집은 어둠과 적막 그 자체였다.' 불도 켜지 않고 들어선 욕실. 빛이 없기에 허둥댈 만도 하건만 채유는 익숙하게 칫솔과 치약을 찾아서 양치를 시작했다. '“아야!”' 잠이 완벽하게 깨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힘주어 칫솔을 놀렸기 때문일까? 꽤 무거운 아픔에 소리를 내지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입 안에 비린 피 맛이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느낄 수 있는 건 아픔과 피 맛 뿐. 다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채유는 굳이 불을 켜고서 거울을 쳐다보며 입 안을 살피려 하지 않았다. 단지 물고 있던 거품을 뱉어내고서 물로 입안을 헹구었을 뿐이다. ' 작은 실수를 범했던 양치가 끝나고 난 후, 채유는 팔을 뻗어 비누를 잡았다. 어둠의 세계에서도 모든 것이 너무나도 익숙한 그녀. 어둠 속에서만 생활한지가 벌써 1년째이니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간단하게 씻고 나온 채유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날카로운 기계음에 자신도 모르게 살짝 몸을 떨었다. '“윤채유! 자냐?”' 익숙한 목소리. 어느 부분인지도 모를 기억의 한 부분을 잃어버렸다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과 그 사람의 목소리. 채유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나 방에 있어.”' 속삭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반가운 손님인 강해는 금세 채유를 찾았다.'“언제 일어났어?”'“지금. 그런데 어떻게 왔어? 너 회사에 있을 시간 아니야? 퇴근한 거야?”' 봇물처럼 터지는 채유의 질문에 강해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어댔다.'“시계도 없고, 해가 떴는지 졌는지도 모르는 집구석에서 내 퇴근 시간이 지났는지 안 지났는지 어떻게 알아?”'“감이라는 게 있잖아.”'“감?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젠 좀 현실적으로 살 수 없냐? 너 무슨 맹인 체험 해? 도대체 1년 동안이나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