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살 사람. 춘식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곧잘 지칭하고는 했다. 수현은 처음 마주한 상대 당사자인 원고 춘식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변호사인 그녀에게도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법정이라는 공간은 그에게서 핏기를 모두 빼앗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새하얗게 질린 그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법정의 벽과 기둥은 소리마저도 빼앗아 가버렸다. 그의 눈은 계속해서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60이 넘은 사람의 표정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엄마를 잃은 어린아이가 지을법한 그의 표정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수현의 시신경을 거쳐 그녀의 뇌리로 전달되었다. 가슴의 저릿한 느낌이 수현이 첫 단독 사건으로 느끼던 긴장감을 순간적으로 잊게 했다. 그의 얼굴을 더는 볼 자신이 없어 수현은 소송서류로 재빨리 시선을 옮겼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은 안 오신…… 엇, 사임하셨네요?”' 마지막 순간에 제출된 원고측 소송대리인의 사임신청서를 뒤늦게 발견한 이 사건의 단독판사 경민이 서류를 눈으로 재빨리 훑고는 춘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과 함께 속기사들의 바쁜 손놀림이 시작되었고, 수현은 깜짝 놀라며 경민과 춘식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그제야 수현은 그녀에게까지 전달되는 춘식의 긴장감이, 초조함이, 불안함이 단지 그의 변호사가 늦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경민을 바라봤다. 그의 다갈색 눈은 춘식을 안심시키기 위해 당황한 빛은 감추고, 따스함만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춘식의 손의 떨림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 수현은 경민의 첫인상을 그렇게 평가하며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 지었다. 바로 그 순간 경민의 시선이 춘식에서 수현으로 옮겨왔고, 수현은 재빨리 미소를 거둬들였다. 몰래 쳐다보다 들킨 것 같아 그녀의 얼굴이 옅은 홍조를 띄며 아주 살짝 달아올랐다. ' “피고 측 소송대리인은 출석하셨구요.”' “네.”' 경민이 머리를 살짝 쓸어 올리며 말했고, 수현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이며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고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변론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임이 명백했다. 경민은 서류뭉치를 빠른 속도로 쭉 넘겨보고는 결단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원고 측 대리인이 개인 사정과 변론에서 원고와의 의견충돌이 있었다는 이유로 사임서를 제출하셨어요. 원고는 이 사실은 알고 계셨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