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여자!”'뉴스 속보가 흘러나오는 사무실 안, 현서는 은빛 안경테 사이로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미국에서 메일로 도착한 동영상 안에서는 윤설아의 딸 윤하루가 음악에 맞춰 격한 댄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21년 만에 불쑥 이렇게 소식을 전하는 건 그래도 당신과 나 사이에 아직은 우정이라는 게 남아 있을 것 같아서. '눈은 하루의 몸짓을 보고 있었지만 귀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사실, 믿기 힘들겠지만 나 얼마 못 살 것 같아. 뭐 그걸 알리겠다고 이렇게 메일을 보내는 건 아니고.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추접스럽게 울고 짜고 하는 거 내 적성에도 안 맞는 거 잘 알지? '현서의 어금니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우리 딸 하루, 하고 싶은 거 시켜주기로 했어. 그래서야, 웃기지만 당신한테 이렇게 연락 닿으려 애썼던 거.'과연, 윤설아다웠다. 죽음이 턱 아래까지 차고 올라와도 할 일은 하고 볼 사람이지, 너란 여자는. 현서는 자신의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모니터에 신경을 집중시키려 애썼다.'-당신이라면 발견하게 될 거야, 그 아이의 진가를. 물론 치가 떨리게 내가 미울 테지만 당신이라면 그 아이, 꼭 성공시켜 줄 수 있겠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당신이 이 방면에 최고니까.'현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루의 실력은 뛰어났다. 기초도 확실히 잡혀 있고 동작도 커서 눈에 쏙쏙 들어오는 이점도 있었다. 팔과 다리가 긴 반면 유난히 마른 몸. 마치 25년전 설아를 보는 듯 현서는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져왔다. '-키워줘. 그리고 되도록 일에 미쳐서 미국에 혼자 남은 엄마, 떠올릴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어 줘. 친구로서, 그리고 한때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마지막 부탁이야.'마지막……. '이 마지막이라는 말이 가지는 위력이란 참 위대하지. 몇 번이고 삭제를 누르려던 그의 손가락을 멈추게 만들던 그 한 단어. 마지막…….'사무실 문이 열리고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미우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최현욱. 그의 붉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현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인터넷은 온통 난리가 났는데 참 한가하기도 하구만.”'“…….”'“사무실 전화벨 소리에 내 귀가 다 멍멍하다. 뭐하는 녀석이냐, 너는?”'“죄송합니다.”'“방편은 세워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