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네가 원하는 대로 불러도 돼.”'그 때 무릎에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가 푸드덕거렸다. 나는 용케 떨어지지 않고 몸을 뒤채는 고양이를 내려다보다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고양이는……?”'“고양이도 이름이 없어. 네가 이름을 붙여줘.”'어쩐지 고양이의 이름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그러면, 엘리제.”'내 이름을 조금 변형해서 만들었던 첼로의 이름. 순간 고양이가 화냈다.'“여자 이름이잖아!”'화내는 고양이를 달랜 건 소년이었다. 그는 곧바로 내 앞까지 걸어와 고양이를 들어올렸다. 나는 어깨를 움츠린 채 공중에서 버둥거리는 고양이를 보았다.'“손님한테 화내면 못써. 그리고 엘리제라는 이름 예쁘잖아.”'그 애는 반항하는 고양이를 아주 능숙하게 다스렸다. “요즘은 유니섹스 시대야.” 소년의 한 마디에 고양이는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약간 기가 질린 채 또다시 다리를 다친 사람의 무릎으로 뛰어오르는 개념 없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뭐, 물론 다친 것은 발목이고 그건 무릎과는 아무 상관없지만.'“그런데 고양이가 말을 해?”'고양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당연하잖아.”'“……그렇구나.”'“앨리스네 고양이는 말을 안 해?”'나는 잠시 생각했다. 우리 집은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 털이 잘 날리는 고양이를 키웠다간, 수없이 많은 고급 드레스나 부모님 취향인 값비싼 앤티크 가구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말을 하는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 응 안 해, 하고 대답한 나는 잠깐 머뭇거리다 ‘하는 고양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하고 덧붙였다.'나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이름을 가르쳐 주는 대신 내가 원하는 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했다. 남자들과도 친하지 않은 난 보통 남자들이 어떤 이름을 갖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무슨 이름이 어울릴까. 그나마 내가 조금 가까이 다가서고, 손을 잡았던 남자애는 지그프리트 왕자인 얀이 유일했다. 아, 얀은 별명일 뿐이고 그 애의 진짜 이름은.'“노아.”'“노아?”'내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을 반복한 소년이 살짝 웃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미심쩍은 느낌이 남아있는 웃음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당황스러운 것일까 싶을 만큼.'“좋은 이름이네.”'노아. 나는 입안으로 이름을 중얼거렸다. 뭐든지 안 어울릴 듯 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그 애에게 노아라는 이름 또한 잘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