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잘 둔 덕에 멋진 여행도 할 수 있고.”'지아는 이번 여행이 못마땅했다. 미애의 남자 친구가 비용을 대는 것도 불만이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잘못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키지 않는 마음에 만류를 해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불길하다고 가지 말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계집애, 별걸 다 걱정한다. 스위스 가서 스키도 타고 재미있게 놀다오면 그만인데 사서 걱정할 건 뭐야?”'“쟨 원래 저런 스타일이잖아. 안 간다고 다시 한 번 해 봐. 그땐 친구고 뭐고 없을 줄 알아.”'미애와 소희의 압박에 못 이겨 지아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하지만 찜찜한 마음은 사그라지지 않고 커져만 갔다.'“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미애의 절친한 친구 분들인데 잘 모시겠습니다.”'미애는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다지만 그 장단에 소희까지 저리 흥분해서 좋아라하니 지아는 난감하기만 했다. 미애의 남자 친구 동규는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다행이 잘난 체를 하지 않아서 좋았지만 과시욕이 심한 편이라 그게 못마땅할 때가 종종 있었다.'“그래도 신세를 너무 지는 것 같아서.”'지아는 너무 튕긴다고 할까봐 둘러댈 말이 없었다.'“지아 씨가 너무 여려서 그래요. 우리들은 일 년에 몇 번씩 이렇게 해외로 놀러나갑니다. 팡팡 놀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 마음 편하게 놀다 오시면 됩니다.”'남자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나서야 할 것 같았다. 보수적인 미애의 집에서 지아가 안 가면 절대 못 보낸다고 한다니 코는 이미 끼어 버렸기에 그녀가 단념하는 게 빠를 것이다.'“그래, 얼마나 재미있는지 가서 마음껏 보고 느끼면 돼지.”'모든 것은 동규가 준비했기에 여행 중에 입을 옷만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이왕가는 것이니 가기 전에 알프스에 대한 것들을 알아보기 위해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여러 가지 정보들 중에서 그녀의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화면가득 보이는 몽블랑의 설산이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높이 솟은 산들 중에 유난히 그녀의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하얀 눈 속에 어떤 것이 그녀의 관심을 끄는지 모르겠지만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 안에 무언가 존재하는 듯 한 느낌은 잔잔한 파장을 만들었다.'‘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물들었나 보네.’'스위스로 출발하는 날 동규의 차가 집 앞까지 그녀를 데리러 왔다. 혹여 당일에 그녀가 못 간다고 할지 모른다는 노파심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차 안에는 모두들 여행의 기대감으로 들떠 얼굴에 꽃이 피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고 싶은지 미적거리는 그녀를 재촉했다.'“빨리 타. 부모님께 인사는 드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