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분명히 무언가가 움직였다. 그것은 아주 유연한 동작으로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앞이 잘 보이는지 검은 그림자는 좁은 서재에서 부드럽게 몸을 옮겨 다녔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커다란 책상 뒤에 붙어있는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고흐의 ‘빈센트의 방’ 이라.”' 검은 복면을 한 그림자의 입에서는 놀랍게도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이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흠. 그런데 저 소박한 그림 뒤는 그다지 소박하지가 않다 말이지.”' 그녀가 그림을 조심스럽게 벽에서 떼어내자 차가운 한기가 흐르는 회색빛 금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는 부드러운 손길로 금고문을 쓰다듬었다.' “반가워 친구. 그냥 좋은 말로 할 때 열려주라.”' 그녀는 매고 있던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꺼내더니 금고를 열기 시작했다. 한참을 금고문과 씨름하던 그녀의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가 번지는 순간 금고문이 부드럽게 그 입을 열었다. ' 찬란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 금고의 입구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여자의 손은 그런 것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보석을 지나쳐 그 뒤로 들어가더니 황갈색의 서류봉투를 꺼냈다. 여자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머리 위로 복면을 벗었다. 순간 풍성한 웨이브의 검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목 뒤에서 검은 스카프에 단정하게 묶여 허리 밑까지 찰랑거리며 내려앉았다. ' 봉투 속의 내용물을 확인한 여자는 만족스러운 듯 봉투를 잘 갈무리하며 금고문을 닫고 다시 벽에 그림을 걸었다. 그리고 검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 책상에 던졌다. 나비모양의 검은 핀이 보기 좋게 책상 한 귀퉁이에 꽂히자 여자는 즐거운 듯 손 키스를 날려 보내고 몸을 돌렸다. 순간 단단한 벽에 부딪힌 듯 몸이 뒤로 휙 휘어지면서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아…….”' 하지만 여자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건장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 그녀의 몸이 넘어지는 것을 막았다. 여자의 눈이 커지며 그 팔의 주인공을 올려다보았으나 전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잡고 있는 팔을 보아 분명 신체 건강한 남자임이 분명했다. 여자는 서둘러 그 팔 안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그럴수록 팔이 더욱 죄어들어왔다. 드디어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이 그 유명한 검은 나비군?”' 어둡고도 음침한 목소리였다. 위압적이고 거만한 말투에 그녀의 몸이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