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엇이냐?”'지석은 부친이 내미는 몇 장의 사진에 시선을 내렸다. 지금 부친이 내미는 사진을 들여다보던 그의 눈매가 눈에 띄게 가늘어 졌다. '이제 반백이 다 된 나이였지만, 그는 여전히 아버지 앞에서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젊은 시절, 한동안 외유를 하고 돌아온 후, 그는 더욱 기가 죽었다. 아들인 형주가 갈수록 당당할수록 비교가 됐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지석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가 어려워졌다.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한 리안 그룹의 본사 회장실은 아침부터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는 유지석, 리안 그룹의 리조트 사업부 회장 대신 그의 부친이 대답했다. '“못난 놈. 여태껏 제 아들 하나 간수할 능력도 안 되다니, 쯧쯔.”'유철형, 리안 그룹의 총수인 노인의 눈빛이 딱하다는 빛을 발했다. '“내가 알기로 죠슈아는 저 시간에 한국에 있어야 됐다. 서해 그룹 여식과 혼담이 오간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만나지 않았니?”'“맞습니다, 회장님.”'머리를 조아리는 지석을 보며, 회장은 끼고 있던 안경을 벗어 곁의 비서에게 건넸다. '“그런데 딴짓거리를 하고 있었다?”'“죄송합니다.”'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들을 못 마땅한 시선으로 훑었다. '“자넨 내가 죠슈아 저 녀석을 심중에 두었음을 알고 있지?”'“예.”'차기 총수의 재목인 죠슈아 리안, 그의 아들을 말하는 것을 지석은 알았다. 자신을 건너 뛴 후계 승계. 하지만 이의는 없었다. 자신은 이미 힘의 논리에서 밀려났으니까. 게다 스스로는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음도 충분히 알았다. '“왜 녀석인 줄 아니?”'팔십이 다 되어도 정정하고 위세 당당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곁으로 다가온 비서실장의 부축을 간단한 손짓으로 제어했다.'“강자만이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 가문을 지탱한 힘의 근원을 알고 있습니다.”'노인은 지석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러다 주름진 입가를 슬쩍 비틀었다. '“그래. 왕조의 몰락과 함께 했던 우리 가문이 이 척박한 땅에서 일어설 수 있던 근원이었지. 대대로 무인이었던 조상들의 피가 흐름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야. 그놈은 자네와 달라. 밀려났던 벼랑에서 살아 기어 올라온 맹수 새끼야. 자네보다는 내 피가 흐른다고 해야겠지.”'물론 회장은 뒷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밀었다는 얘기가 그 뒤를 이어야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맹수가 날카로운 손톱과 강철 같은 이빨을 숨기고 있다는 것도. 얼마만큼 컸을지, 철형은 그것이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은 모른 척하고 있지만. '“예. 힘을 갖춘 재목입니다. 언제나 아버님께 미덥지 못했던 제 빈자리를 훌륭하게 채워줄 수 있는 아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