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윤은 살짝 고개를 들고 자신을 둘러싼 무리를 응시했다. 게슴츠레하게 눈이 풀린 걸 보니, 아마 어디서 약이라도 하고 온 모양이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서 있으면 희윤은 상당히 아름다운 편에 속했기 때문에, 희윤을 둘러싼 무리는 간만에 좋은 게 걸렸구나 싶은 표정들이다. 욕정에 휩싸인 그 더러운 얼굴들을 보며 희윤은 씩 웃었다. '‘기분도 엿 같은데 잘됐구나!’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어떻게든 잠재우고 싶었는데 마침 녀석들이 나타나 줬다. '“이년, 예쁜데?”'“누구 먼저 시작할래?”'“내가 먼저 할래, 내가!”'한 녀석이 침을 질질 흘리며 앞으로 나서자 다른 녀석이 막아선다. '“내가 먼저 할 거야, 새끼야! 저번에는 네가 먼저 했잖아!”'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그들을 보며 희윤은 즐거웠다. '‘그래,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 계속 쓰레기 같이 지껄여라. 내가 점점 더 니들 죽일 맛이 나게.’'한동안 누가 먼저 할지를 놓고 싸워대던 그들은 결국 한꺼번에 달려들기로 합의를 봤다. 희윤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던 그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 가운데 서 있던 희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움직임을 멈췄다. '없다! '그들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가게들이 몰래 갖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나는 좁은 골목. 희윤이 몸을 감출만 한 곳은 어디에도 없는데 희윤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약에 취해 환각을 본 거라고 생각했다. '“크흑!” '그때, 선두에 있던 녀석이 신음과 함께 풀썩 쓰러졌다. 그들 일행은 화들짝 놀라 쓰러진 녀석을 살펴봤다. 둔기에 맞은 듯 찢어진 녀석의 머리에서 피가 콸콸 흘러내렸다. 놈들은 두려움에 떨며 주위를 살폈다. '무언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언가가 이 골목 안에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한 녀석이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녀석의 목이 반쯤 돌아간 것으로 보아 즉사한 것이 분명하다. '놈들의 발밑에서 스멀스멀 공포가 기어올라 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욕정으로 가득하던 그들의 눈은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서로를 쳐다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골목을 벗어나려 했다. 단지 벗어나려고 시도만 했을 뿐이다. '그들은 골목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시도는 시도로 끝났다. 그들은 골목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여 그들은 전부 쓰러뜨렸다. '마지막으로 쓰러진 놈의 눈에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희윤의 모습이 보였다. 깨끗했던 그녀의 하얀 점퍼 끝이 피로 물들었다. '그 순간 희윤의 얼굴을 본 놈은 희윤이 분명 저승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끔찍할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 짓는 저승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