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아야얏!”'잠결에 허우적거린다는 게 그만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머리부터 거꾸러진 진홍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일어나려고 노력했지만 떨어지면서 이마를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뒷골까지 띵해서 한동안 방바닥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이고, 이거 혹 생기는 거 아닌가? 아우, 아파. 냉찜질이라도 해야 하나. 귀찮은데…… 어? 저거 뭐야…… 저거…… 혹시.”'절반쯤 뜬 눈에 들어온 까만 무언가에 잠시 게으름을 피우던 진홍의 잠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사삭거리면서 재빠르게 발을 움직여 방바닥을 기어가는 것은, 틀림없는 바퀴벌레였다.'“바퀴벌레, 벌레, 바퀴, 바퀴벌레! 으아!”'벌떡 일어난 진홍이 침대 위로 껑충 뛰어 올라가서는 바닥에 얼마쯤 흘러내리고 만 이불을 황급히 끌어올렸다. 바퀴벌레가 쫄쫄 거리면서 책상 아래로 기어가는 걸 파랗게 질려서 쳐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잡아야지. 살충제, 살충제! 네 이놈, 숨지 말란 말이다, 여기서 살 생각은 꿈도 꾸지 마!”'살충제를 찾아서 우왕좌왕하던 진홍이 바로 책상 위에 버젓이 놓여있던 살충제를 보고 손에 뻗는데 살충제 뒤쪽으로 보이는 시계가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 전자시계의 빨간 글씨가 나타내는 숫자의 조합. '“열 시 이십오 분? 오, 마이 갓!” '비명을 내지르며 진홍은 책상 아래에 있는 세면도구를 꺼내려고 고개를 숙였다. 막 세면도구 통을 들려는데, 바로 그 옆을 지나치는 바퀴벌레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으아아, 바퀴벌레! 아니지, 열시 이십오 분이란, 아이고, 바퀴벌레! 아니, 학교!” '자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어 진홍은 눈 딱 감고 세면도구 통을 집어 들고 벌컥 방문을 열고 나갔다. 조용한 고시원의 복도에 그녀가 구르듯이 뛰어가는 소리가 쿵쾅쿵쾅 울렸다.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듯 우중충한 날씨 속에 진홍이 ‘늦잠’이라고 하는 평생 하지 않던 실수를 저지른 날이었다. 일견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던 그 실수가 얼마나 치명적인 일로 번져갈 지, 그녀는 결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십 분이 채 안 되어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고시원 밖으로 나온 진홍이었지만, 하필이면 비가 오고 있는 바람에 우비를 찾으러 다시 위로 뛰어 올라가야했다. 문단속을 다시 하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우비를 껴입은 뒤 전력질주로 근처에 세워 둔 오토바이를 향해 달렸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열시 사십분이 되기 일분 전. '“좋아, 가는 거다! 적토마! 우리 사전에 지각은 없어! 너만 믿는다!”'원래 비오는 날에는 되도록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주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열한 시에 영어2 과목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 교수님은 유난히 시간에 깐깐해서 단 일분의 지각도 용납되지 않는다. 만약에라도 시간에 못 대어 시험을 못 보게 된다면 이번 학기의 학점엔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전장학생 이라고 해도 일정한 학점 유지는 필수인 것이다. 진홍은 기세 좋게 ‘적토마’라고 부르는 자신의 오토바이에 올라탄 뒤 헬멧을 쓰고 시동을 걸었다. 아직 많이 젖지는 않은 노면 위로 오토바이가 최대한의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