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과거의 잔상(殘像)''''''과거의 잔상(殘像)'''제국력 994년 미제르 황성 황태자궁.''''''“으아악, 안 돼!” ''비명을 길게 내지르며 누군가 벌떡 일어났다. 소년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의 어린 아이였다. 창문으로 넘어 들어오는 달빛에 반짝였던 금빛 머리카락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이미 잠옷도 그가 흘린 땀으로 젖어 가냘프고 호리호리한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날카로운 비명에 놀란 근위대원 2명이 레이저총을 들고 들어왔다. ''“황태자 전하! 괜찮으십니까?” ''그들은 황태자의 신상을 살피며 한 명은 창문 쪽으로 달려갔고, 다른 한 명은 황태자의 곁에 서서 주위를 탐색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발견한 것이 없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린 소년 앞에 고개를 숙였다.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어린 황태자의 모습에 그들은 급히 황실 어의와 황태자의 유모에게 연락을 취했다. 유모는 몇 분되지 않아 방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어의가 들어와 황태자의 몸을 살폈다.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어의는 조용히 물러갔다. 방 안에는 유모만이 남았다.''40대에 가까운 풍만한 몸매를 하고 있는 유모는 애처롭고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어린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전하? 정신을 차리십시오. 물을 드시겠습니까?”''황태자는 그녀가 준 잔을 받아들고 물을 삼켰다. 그제야 정신이 든 듯, 황태자의 눈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유모…….”''꺼질 듯한 가냘픈 목소리가 황태자의 목에서 나왔다. 이마에 흘러내린 땀이 눈에 들어가 다시 눈물이 된 듯 볼로 흘러내렸다. 유모가 손을 들어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려 했지만 황태자는 흠칫하며 몸을 뒤로 뺐다. 타인의 손길을 거부하는 그 모습에 유모의 가슴이 알싸하게 아파 왔다. ''언제나 그랬다. 어려서부터 황태자는 자신의 속내를 타인에게 함부로 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그를 돌봐준 유모라고 하더라도 황태자는 자신의 마음 한 자락을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악몽을 꾸신 겁니까? 같은 꿈입니까?”''황태자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유모는 한숨을 쉬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악몽. 그 악몽은 오래 전부터 황태자를 사로잡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명의라 하더라도 고칠 수 없었다. 마음의 병이란 소리만 지껄여대며 떠났다. ''마음의 병이라니. 6살을 갓 넘긴 어린 황태자가 무슨 마음의 병을 앓는단 말인가. 성인도, 하다 못해 소년도 아닌 황태자가! ''아인하르텔 B. G. 미제르. ''미제르 황실의 제1 황위계승자인 황태자의 이름이다. 그의 위로 후궁 소생의 형이 2명 있지만 그만이 황후 소생이다. ''황태자는 다른 형제들 보다 월등히 총명했다. 어린 나이지만 사리분별이 확실했으며 석학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성군이 될 재목이라고 칭송을 했다. 아울러 이복 형들을 빛 바래게 만드는 제왕으로서의 위엄도 갖추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을 아끼는 황태자. 백성들의 지지아래 황태자의 직위를 공고히 하고 있었다. 비록 이복 형제들의 견제와 그들을 지지하는 귀족세력의 틈바구니 속에 살아야 했지만, 황태자가 가진 제왕의 기질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전하, 땀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목욕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황태자는 유모의 얼굴을 흘긋 쳐다보고는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욕실 문을 닫히고, 황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유모는 혀를 차며 침대 시트와 이불을 들어냈다. 그리고 새로운 시트와 이불을 침대에 올려놓았다. 새 잠옷과 함께. ''아인하르텔은 욕실로 들어왔다. 넓은 탕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곳에 눈길을 두지 않고 바로 샤워시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샤워기 꼭지를 틀자 차가운 물이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잠옷을 입은 채로 그 물을 맞았다. 차가운 물이 어깨를 때릴 때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고스란히 차가운 물을 맞았다.'옷이 달라붙어 기분이 나빴다. 아인하르텔은 옷을 잡아 찢듯이 벗어 던졌다. 거울 위로 알몸이 드러났다. ''또래의 아이들 보다 큰 키, 가느다란 몸매, 황금빛 머리카락, 공허한 푸른 눈동자. 공허한 눈동자……. 공허한……. ''아인하르텔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두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등뒤로 차가운 물이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황태자의 입에서 작은 억눌린 신음과도 같은 소리가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난, 난 대체 누구지? 이언인가? 아니면 크리스? 바트? 질리언? …… 아인하르텔 미제르는 어디에 있는 거지? …… 에리얼, 에리얼, 당신은 어디에 있는 거야?” ''속울음을 우는지 아인하르텔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지구력 2017년 서울 ''''''소년은 아버지의 야단을 묵묵히 흘려들었다. 지금 아버지는 싸움을 한 자신을 야단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 생각했다.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생기면 오늘과 똑같이 싸울 거란 걸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는 잘 알고 있었다. ''소년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었다. 애초 그 녀석이 동생을 놀리지만 않았어도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연약하고 눈물이 많은 동생의 머리를 잡고 흔들며 놀리지만 않았어도. ''다른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동생문제에 들어가면 소년은 이성을 곧잘 잃는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상대 녀석이 코피를 쏟으며 울며 도망갔던 걸 생각하면 속이 다 시원했다. ''“이제 그만하세요, 여보. 유진아, 가서 유나를 불러오렴. 과일 먹자.”''어머니의 도움에 감사하며 유진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상대놈에게 얻어맞은 갈비뼈가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 잔소리를 늘어놓던 부친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애처로운 신음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유진은 자신의 아픔과 부모의 걱정을 무시했다. ''유진은 여동생을 부르러 정원으로 나갔다. 작은 집에 딸린 조그마한 정원이지만 울창함을 자랑하는 사철나무와 동백나무, 모과나무 등등이 소담스럽게 심어져 운치를 자아냈다. 그리고 큰나무 사이사이에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자칫 단조로워 보일 정원에 화사함을 더했다. ''거실에서 정원으로 향하는 계단 위로 넝쿨 장미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유진은 분홍색의 아름다운 장미꽃에 코를 가져갔다. 향긋한 향기가 풍겨왔다. 반쯤 핀 장미를 손으로 톡 건드리고는 계단을 내려가 여동생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저기 있군. ''모과나무 그늘 아래에 여동생이 보였다. 나무의자에 앉아 모과나무에 등을 기대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여동생 주위엔 언제나처럼 작은 새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여동생의 어깨 위에, 손가락 위에 앉아 여동생의 노래 가락에 맞춰 같이 노래를 불렀다. ''막 3살을 넘긴 여동생. 이제 겨우 동화책을 더듬더듬 읽고 자신에게 동화책 내용을 재잘재잘 대는 여동생이었다. 그런데 어린 여동생이 어디서 노래를 배웠는지 가사도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흥얼거리고 있다고 해야하나. ''유진과 여동생의 나이 차는 5살이나 되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라 항상 여동생은 자신이 돌봐야 했다. 가끔 떼를 써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유진은 여동생을 무척 예뻐했다. 아마 부모님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여동생에 대한 미안함일 수 있었다. ''부모님은 일이 바쁘셔서 주말이 되어도 같이 놀아주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울고 보채는 여동생은 언제나 유진의 몫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여동생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음정도 박자도 가사도 맞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가 왜 그리 편안하던지. 아마 여동생 주위에 몰려든 새들도 편안함을 느껴 몰려들었을 것이다. ''여동생의 이런 능력은 유진만이 알고 있었다.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자신이 사랑하는 여동생을 빼앗길 것 같아서였다. 여동생 주위에 몰려드는 새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유진의 불길한 마음은 커져갔다. ''유나의 발치에 앉아 있던 애완견 멍멍군이 유진의 기척을 먼저 알아챘는지, 돌아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긴 적갈색 털이 예쁜 개였다. ''멍멍군을 볼 때마다 유진은 항상 웃음이 나왔다. 멍멍군이 처음 집으로 왔을 때가 생각나서였다. ''부모님의 크리스마스 선물인 멍멍군은 곧 유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적갈색 폭신한 털에 목에 매어진 커다란 리본, 그 강아지를 받아들고 활짝 웃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유나야, 강아지 이쁘지?’''‘네.’''‘우리 식구가 될 강아지에게 네가 이름을 지어주렴.’''강아지를 품에 꼭 안고 있던 유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 모습에 부모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낑낑대던 강아지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유나가 고개를 발딱 들었다. 부모님과 유진은 유나가 어떤 이름을 지을지 기대하며 바라보았다. ''‘멍멍탕!’''휘청……. 부모님이 비틀거리셨다. 유진도 멍하니 유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지은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유나가 강아지에게 멍멍탕, 멍멍탕하고 불렀다. 강아지도 좋은지 유나의 얼굴을 핥았다. ''유진은 멍멍탕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동네 근처에도 그걸 파는 가게가 몇 군데 있지 않던가.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말했다. ''‘유나야, 그걸 어디서 배운 거야?’''‘멍멍탕? 강아지, 멍멍탕이라고 말했져요. 아저씨들이. 음, 음, 그리고 한 그릇, 두 그릇이라고. 한 그릇이라고……, 음, 음, 두 그릇…….’''어눌한 발음으로 멍멍탕, 한 그릇, 두 그릇이라고 우물거리는 동생을 보니 난감했다. ''‘다른 이름으로 하는 게 낫겠다, 유나야.’''‘왜요, 아부지? 강아지도 멍멍탕이 좋아해.’''‘그, 그게…….’''말을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유진이 나섰다. ''‘유나야, 멍멍탕은 안 좋은 뜻이야. 그러니 다른 이름으로 바꾸자.’''‘그런 거야, 오빠?’''‘그래.’''‘난 좋은데?’''‘그것보다 차라리 멍멍군이라고 하자. 강아지가 남자강아지니까 멍멍군.’''유진의 제의를 한참 생각하던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피식 웃었다. 멍멍탕이 되려다 만 멍멍군이 일어서 유진을 향해 꼬리 치며 다가왔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를 차릴 줄 아는 멍멍군이었다. '밥 주는 것과 목욕, 산책은 모두 유진의 차지였다. 멍멍군에 대한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건 자신인데도 멍멍군은 유나를 더 따랐다. 얄미워 발로 차고 싶지만 말 못하는 개에게 화를 내는 것도 우습고 해서 가만 내버려두고 있었다. ''“유나야?”''“오빠.”''“과일 먹으러 가자.”''유나가 입을 헤 벌리며 나무등걸 의자에서 폴짝 내려왔다. 그리고 유진의 손을 붙잡았다. 그들의 뒤로 새들의 아쉬워하는 울음이 따랐다. ''“앗, 구리군이다.”''유나의 손짓에 유진은 작은 연못을 바라보았다. 연못 가 보라색 붓꽃 아래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구리군. 청개구리에서 청개를 빼고 유나가 지은 이름이었다. 구리군이 그들의 발걸음에 놀란 듯 퐁당 물로 뛰어들었다. 물 속에 몸을 쭉쭉 뻗으며 헤엄치는 청개구리 구리군을 한참 지켜보는 유나를 보며 유진은 동생의 이름짓기 능력을 한탄했다. ''오랜만에 부모님이 집에 계셨다. 유진은 여동생을 자신의 옆에 앉혔다. 그리고 포크를 들어 사과를 찍어 여동생에게 줬다. 사각사각 갉아먹는 유나의 입가에 사과즙이 흘러내리자 유진은 휴지를 들고 유나의 입가를 닦았다. 그 모습을 부모님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띠리리리리. ''전화벨 소리였다. 아마도 부모님을 찾는 전화일 것이다. 유진은 이제 그런 일로 토라지거나 하진 않지만 유나의 얼굴이 흐려졌다. 아마도 오늘 유진은 하루종일 여동생 곁에 있어야 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기다리지요.”''“아빠, 가?”''“아, 아니다, 유나야.”''아버지가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여보, 무슨 전화예요? 기다리다니요? 누가 집에 오기로 했나요?”''“그, 그게 말이오…….”''어머니의 질문에 허둥대던 아버지가 말을 끝내지 못했다. 현관벨이 길게 울렸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펄쩍 뛰어오르셨다. 그리고 머뭇대다 인터콤으로 가셔서 수화기를 드셨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어머니께서도 일어나셔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셨다. ''누굴까? ''“오빠, 포도.”''유나의 말에 유진은 아버지를 좇던 눈길을 돌렸다. 사과를 다 갉아먹었는지 포크가 비어있었다. 유진이 신경을 딴 곳으로 돌린 동안 유나의 입가와 턱, 그리고 웃옷에 사과즙이 흘러있었다. 유진은 급히 휴지를 꺼내 유나의 얼굴과 옷에 묻은 찌꺼기를 닦았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이었다. ''그들은 TV에서나 보던 옷을 입고 있었다. 긴 웃옷은 끈으로 허리에 고정되어 있었고, 바지는 발목에 끈을 묶어 풍성하게 보이게 했다. 남자들이 입고 있는 옷 색깔이 푸르렀다. 소매와 웃옷 끝엔 하얀 천을 덧대어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나중에야, 이 문양이 청룡이란 걸 알았다. ''같이 온 여인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푸른 천으로 묶고 있었고, 웃옷과 무릎아래까지 오는 치마는 하얀 색이었다. ''하얀 이미지. 깨끗하고 맑은 분위기가 여동생과 흡사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유진아, 유나와 같이 저 끝에 가서 앉거라. 아니면 방에 들어가 있던지.”''유진은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유나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또래의 아이보다 훨씬 큰 유진의 품안에 조그마한 여동생이 폭 안겼다. ''무슨 일일까? 그들은 누굴까? ''여동생을 꼭 안으며 유진은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유진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하얀 옷의 여인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 유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앉지도 않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와 그녀의 시선이 부딪쳤다.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유진은 유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가 손을 들자 유진은 흠칫했다. 그녀가 천천히 유나의 볼을 쓰다듬었다. ''유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을 쳐 유나의 뺨에서 떨구어 냈다. 유진의 돌연한 행동에 잠시 당황하던 그녀가 유진을 보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과연……, 어린 기사님의 허락도 구해야겠군요.”''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뜻 모를 소리를 하며 자신을 당황케 한 그녀가 부모님에게로 갔다. 그리고 살풋 인사를 하며 말했다. ''“청룡님의 신녀로 있는 해인이라 합니다.”''“신녀님이 저희 집에 무슨 일로?”''“따님 이름이 유나이지요? 혈족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자신들이 방문한 까닭을 말했다.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겨우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물었다. ''“혈족의 힘이라구요?”''“네.”''“유나를 데리고 갈 겁니까?”''아버지의 비명 같은 물음소리가 들렸다. ''“아, 지금은…….”''“안 돼! 유나는 못 줘!”''혈족이 뭔지는 몰랐다. 하지만 유나를 데리고 간다는 말만 유진의 머리 속에 크게 울렸다. 새들을 친구로 뒀던 여동생에게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이 유진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들이 자신의 여동생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여동생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유진은 유나를 꼭 끌어안았다. ''오빠의 험악한 얼굴과 부모님의 당황하는 모습, 그리고 무표정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두 명의 낯선 남자, 온화한 기운을 내고 있는 여인. 유나에겐 모든 것이 낯설었나 보다. 유나가 울음을 터트렸다. 유나의 울음소리에 유진의 눈빛은 적개심으로 불타올랐다. 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신녀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급히 입을 열었다. ''“지금 여동생을 데리고 가려는 건 아니에요, 기사님. 유나가 7살이 되었을 때 화랑학교에서 공부하게 하려는 겁니다.”''“유나는 못 보내요!”''지금이든 그때든 여동생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유진은 절대 유나 혼자 보내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다. 유나의 울음소리가 커져갈수록 유진의 그런 생각은 커져갔다. ''그날, 늦여름 햇살이 기승을 부리던 날, 그들의 방문으로 유나와 유진의 인생이 바뀌었다. '''''''제 2 장 여정(旅程)''제 3 장 해후(邂逅)''제 4 장 황성 무도회''제 5 장갈''제 6 장 크리스마스 파티''제 7 장 끝을 향한 시작''제 8 장 미친 사랑의 노래 ''제 9 장 방해 ''제 10 장 여행''제 11 장 미제르로 가는 길''에필로그''작가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