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너 미워.”'거짓말. 그녀의 가슴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겠지.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마치 현수가 하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에 파르르 떨리는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며 미소가 스쳤다. '“거짓말 아니야. 엄마는 정말…… 현수 미워.”'거짓말! 아까보다 더 크게 들리는 가슴의 소리. 가운 주머니 속에 있는 소희의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도 끝까지 주머니 밖에서 손을 꺼내지 않은 채 소희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냥 와 봤어. 미운데, 정말 우리 현수 미운데…… 그냥 와 봤어!”'주먹 쥔 손으로 줄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눈가를 훔쳤다. 여전히 아이의 사진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한참을 서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현수야. 엄마가 미안해. 그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엄마가 우리 현수에게 미안한 게 참 많아. 제대로 안아 주지도 못하고……밥 한번 떠 먹여 보지도 못한 것 같아. 이런 엄마에게 우리 현수가 왔으니. 엄마가 미안해.”'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는데도 소희는 아이의 사진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사진은……사진일 뿐이었다. 가슴에 한번 안아주지도 못하는 사진. 아이의 머리카락조차 만질 수 없는 사진일 뿐. 따뜻한 체온조차 느낄 수 없는 사진을 봐서 뭐하나. '“힘드니? 아프니? 무섭니?”'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점점 묵직해지는 가슴의 통증을 끌어안은 채 소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진 속의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래서……엄마 찾는 거야? 같이 있어달라고?”'눈물로 시야가 흐려지면서 아이의 얼굴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거칠게 눈가를 문지르고 소희는 작은 납골안의 문을 열었다. 하얀 순백의 도자기의 유골함을 쓰다듬었다. 마치 살아있는 아이를 어루만지듯 소희의 손길은 따뜻하고 뜨거웠다. '“근데 현수야. 엄마는 갈 수 없을 것 같아. 너 그렇게 보내고 아빠 많이 아파하셨어. 그런데 엄마마저 너한테 가봐. 아빠 어떻게 하라고. 엄마가…… 엄마가 조금만 더 아빠 곁에 있다 가면 안 될까? 엄마도 우리 현수 많이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 그런데…… 갈 수가 없어. 아빠 어떻게 하라고. 엄마마저 없으면 네 아빠 어떻게 살라고. 불쌍하잖아. 그러니, 현수야. 네가 조금만 엄마 봐주면 안 돼? 엄마…… 조금만 더 아빠 곁에 있으면 안 돼?”'손바닥으로 묵직해진 가슴을 쓸면서 소희는 애원했다. 조금만 더 있게 해달라고. 조금만 더 같이 있게 해달라고. 아직 경하와 풀지 못한 숙제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 이대로 갈 수는 없다고. 이렇게 손을 놓을 수 없다면서. '“현수야…… 사랑해. 너무…… 너무 사랑해.”'자신의 사정을 조금만 더 봐 달라 말하는 엄마. 역시 소희는 모진 엄마였나 보다. 금방 가마해도 될까말까인데…… 더 살게 해달라니. 더 살아서 아빠 곁에 있게 해달라니. 또 다시 여린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만 같아 소희는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저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애꿎은 가슴만 주먹으로 탁탁 칠뿐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소희는 그 곳을 나왔다. 가슴 속의 답답증은 전보다 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