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야, 수아야 한번만, 응?”'은경은 아까부터 수아의 앞에 앉아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애교를 섞어가며 벌써 30분 째 애원중이다. 소개팅을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과외 시간이 바뀌었단다.'도대체 한 달에 몇 번이나 소개팅을 잡는 건지, 이젠 소개팅이라면 수아 자신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골이 날 정도였다.'“야 그렇게 좋은 자리면 너나 나가지 왜 나한테 그래. 나 그런 거 정말 별루라니까.”'“나 오늘 과외 빠지면 진짜 짤린단 말이야. 수아야 제발 한번만 응?”'처음 본 남녀가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마주보고 앉아 안녕하세요. 를 내뱉는다는 것 자체가 수아는 내키지가 않았다. 여태까지 솔로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도무지 소개팅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수아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 뻘쭘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오늘 본 은경이의 얼굴은 정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거절하면 금방이라도 학교에 있는 호수에 빠져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후…… 나 오후엔 알바두 가야하구.”'“야야, 두 시간이면 돼! 아니다, 한 시간이면 되겠다. 그니깐 땜빵 좀 해주라. 응응?”'“진짜 싫은데.”'“이번기회에 너두 남자한번 만나구 좋잖아. 정말 괜찮데, 만나봐라. 엉?”'아니, 정말 괜찮건 말건 난 관심이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순간 수아는 생각해버렸다. 아, 역시 나도 어쩔 수 없는 21살의 파릇파릇 하진 않지만 어찌되었건 이 땅에 살아있는 평범한 여대생인가. '“몇 신데.”'“응? 5시! 학교 끝나구 바로 가면 딱 맞을 거야. 어차피 그쪽도 그쯤 온다고 했으니까.”'“그냥 대충 얼굴도장만 찍고 오면 되는 거지?”'“응, 야 그래도 너 처음 하는 소개팅인데 이왕이면 잘 좀 해보구와라. 정말 킹카래. 킹카중에서도 초특급 에이스 킹카!”'“어쨌든, 알았어.”'“고마워 고맙다 수아야! 내가 나중에 꼭 밥살께, 혹시라도 니가 잘되면 니가 밥 사고, 훗!”'알았다고 하는 수아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은경은 금세 세상이라도 모두 얻은 표정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수아에게 고맙다 고맙다를 연신 내뱉었다. 평소에 아쉬운 부탁은 잘 안하는 편이던 은경이 수아에게 저렇게 애원하는데 자꾸 거절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수아는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물론 설렘 반, 이라는 것은 은경에겐 비밀이었다. 소개팅에 시옷조차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했으니깐 말이다. 남자친구가 없어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남자친구가 없어서 부러웠던 경험은 종종 있었다. 경기도에 위치한 대학이지만, 서울에 사는 아이들은 통학하기가 여간 좋지 않아서 대부분 기숙사에서 생활 했다. 1학년 때는 부모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유로움 때문에 마냥 좋았지만, 일명 기숙사 커플! 들 때문에 기숙사에 사는 것도 마냥, 좋지 만은 않았다. 밤늦도록 기숙사 주변 벤치에 앉아 애정행각을 벌이거나, 하루 종일 손을 꼭 붙잡고 다니는 연인들. 뭐 2학년 쯤 됐으니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그런 꼴사나운 광경들은 2학년이 되어도 쉽게 익숙해지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