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겸은 정 실장에 의해 본가로 옮겨졌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던 겸은 다음 날 잠을 깼을 때 머리가 깨질 듯한 아픔을 느꼈다. 어머님이 걱정스런 얼굴로 가져다주신 꿀물을 마시고 씻지도 않은 채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겸은 점점 과묵한 사람이 되어 갔다. 의례적으로 하던 직원들과의 농담에도 끼지 않았고 손님들에게 하던 커피에 관한 설명도 없었다. 그런 겸을 주은이 불안한 눈으로 좇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겸은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김형경이란 세 글자만이 온통 그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정 실장은 가끔 연락하며 일의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의외로 매각을 원치 않는 건물주들이 있다고 했다. 겸은 아직은 강경책 대신 그들을 구슬리라 지시했다. 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인지, 아니면 일하는 스타일이 그런 것인지 정 실장은 겸의 속내를 묻지 않았다. 그저 그가 내리는 지시를 묵묵히 따를 뿐이었다. '강하게 나가면 그들은 뭉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하려는 일이 새어 나갈 것이다. 겸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조용히 처리하고 형경이 힘들게 되면 그때 전면에 나설 생각이었다. 비열한 방법이지만 힘들게 된 형경에게 자신을 택하면 도와준다고 손을 내밀 것이다. '오늘 형경은 가게에 나오지 않았다. 그를 피하고 있는 것인지,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형경을 보지 못한 그는 심정이 사나워져 있었다. 무표정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을 하는 손길이 거칠었다. '그런 겸을 바라보던 주은이 시원한 플로트 온 더 커피를 만들어 와 그의 앞에 밀어 주고 바에 앉았다. 그런 주은이 하는 양을 겸은 그저 말없이 지켜보았다. '“오늘 날씨 무척 덥죠? 올해는 여름이 빨리 오려나 봐요. 좀 드세요.”'아이스커피 위에 아이스크림과 휘핑크림을 얹은 커피는 시원하고 달콤했다. 그 달콤한 기운이 겸의 사나운 마음을 조금 진정시켜 주었다. '“겸이 씨보다는 못해도 저도 좀 만들 줄 알죠?”'“훗!”'평소 말이 없는 편인 주은이 그를 위해 싱거운 소리를 하는 것을 알고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에 힘을 얻은 주은은 겸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 만큼의 소재로 그와의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대답을 잘해 주고 호응을 잘해 주는 상대는 아니지만 주은은 그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씩 끄덕여지는 고개라든가 지나가는 눈빛이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말이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을지 모르지만 주은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비록 그와 마음에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그가 마음을 열지 않고 형경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겸을 사랑하는 주은은 그런 것을 알면서도 겸과 마주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아무 의미 없는 대답이라도 그 작은 한마디에 의미를 새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어느새 주은의 머리는 그의 손짓 하나를 새기고, 그의 표정과 목소리를 새기고, 종내에는 짧은 대답의 의미를 새겼다. '“주은 씨.”'“네?”'“저 불편하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