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계절] ''''''제발!'턱까지 숨이 차올라 해윤은 바쁘게 헐떡거리며 맨발로 돌계단을 미친 듯이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눈이 내렸다가 녹고, 이제 다시 얼기 시작한 계단은 끔찍하게 차갑고 미끄러웠다.'작은 돌조각이 그녀의 약한 발바닥을 찌르며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런 것을 아파하거나 닦을 여력조차 없었다. 동지(冬至)가 한참 지난 혹독한 추위에 얼핏 보기에도 너무 얇은 옷은 목 옆으로 보기 흉하게 찢어져 앙상한 그녀의 어깨가 드러나 있었다. 찢어진 그녀의 입술에서도 피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개 같은 년. 감히 네년이 날 물어? 너 잡히기만 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아주 이번에는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을 라니까! 배은망덕한 년.”'키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체격이 단단하고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술 냄새가 섞인 시큼한 숨을 험악한 욕지거리와 함께 거침없이 내뱉으며 그리 멀지 않은 뒤에서 그녀를 쫓았다. 그 두툼한 손을 뻗어 금방이라도 머리채를 휘감을 듯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 손에는 자그마한 이에 물린 자국이 선명했고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최씨 또 술 마셨구먼. 어쩌누, 저러다 애기 잡겄네.”'사람 좋아 보이는 동네 구멍가게의 할머니가 전단지가 어지럽게 붙은 초라한 사립문 앞에 서서 그들이 뛰어간 쪽을 내려다보며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행인 몇도 그들을 스쳐 좁은 언덕을 걸어 올라갔지만 혀를 쯧쯧 차면서도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소란이 드물지도 않은 동네인 데다가 이런 일에 참견하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 탓이었다. '“하아, 하아.”'이미 파랗게 변해버린 입술에서는 하얀 입김이 가쁘게 쏟아져 흘러나오고, 한 손으로 부여잡은 얇은 옷 아래로 해윤의 작은 심장은 터질 듯 두방망이질치고 있었다. 급하게 뒤를 돌아보며 내달리는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