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깊어가는 5월의 그날, 옅은 회색빛 하늘은 소리 없이 비를 뿌렸다. 그래서 더 슬픈 건지도……. '오늘은 그의 여자의 결혼식이다. 지금 강하는 결혼식이 거행될 예배당 문 앞에 서 있다. 신부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강하가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석상처럼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던 강하의 시선은 아련한 슬픔을 담은 채 먼 곳을 향했다. '잠시 후, 교회 마당으로 구급차 한 대가 들어왔다. 순간 강하의 심장은 뜨겁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해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의 심장이 먼저 그녀를 느꼈다. '해인이 차에서 내렸다. 이어 운전석에서 기사가 내리더니 뒷문을 열고 휠체어를 꺼내어 해인 앞에 펼쳐주었다. 해인이 휠체어 손잡이를 잡자 기사는 다시 차 문을 열고 한 남자를 안아 그 위에 앉혔다. 남자는 병원 로고가 적힌 환자복 위에 검은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수염을 밀어낸 파리한 턱 선은 병색이 짙어 보이게 했다. '잠시 후 해인과 몇 마디 나눈 기사는 차에 올라타더니 두 사람만 남겨둔 채 떠나갔다. 가만히 멀어지는 구급차를 바라보고 있던 해인이 남자에게 옅은 웃음을 짓고서 휠체어를 예배당 쪽으로 밀었다.'그녀가 다가온다, 그에게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느린 화면처럼 그렇게 그녀가 강하를 향해 걸어왔다. '해인은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웨딩드레스가 아닌 단순한 모양의 흰 원피스 차림이었지만 그녀는 그 어떤 신부보다 아름다웠다. 강하는 해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는 순간까지도 담고 싶었다. 그녀의 아픔, 눈물, 슬픈 미소까지도 심장에 새겨야 했다.'고개를 숙인 채 걸어오던 해인의 앞으로 그의 긴 그림자가 펼쳐졌다. 휠체어가 그의 그림자를 밟았다. 해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 닿았다. 순간 모든 것이 정지. 가는 빗방울만이 소리 없이 해인의 어깨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강하를 바라보는 해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의 두 눈에는 진한 아픔이 고여 있었다. 강하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로 오면서 수십 번도 넘게 마음을 다져 먹었지만 슬픔에 젖은 해인의 눈빛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우리 이대로……, 그냥 이대로 도망갈까?’'강하는 해인의 시선을 붙잡고 눈으로 물었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이대로 그녀의 손을 잡고서 이 무거운 현실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해인이 힘겹게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러지 마, 오빠. 안 되는 거 알잖아.’'‘몰라, 모르겠어. 싫다, 해인아. 나 너 이대로 보내주기 싫어. 너 없이 나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어.’'강하는 해인에게 다가서기 위해 한 발을 내밀었다. 그의 흔들림을 알아차린 걸까? 휠체어를 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해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