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면 되는 거죠. 갈게요. 가면 되잖아요.”'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이 오열하고 있었다. 말로 나오지 못한 그 눈빛이 연경을 더욱 차갑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지옥에라도 갈 수 있다고 연경은 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엄마에게 저리도 모진 삶을 살게 한 아버지란 이름을 가진 남자에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제 각오를 되풀이해서 말해 주었다.'“엄마에게 다시 한 번 더 손을 대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알아들었어요? 그 많은 세월 해 준 것이라곤 무시와 냉대뿐인 아버지에게 당하지만은 않겠다고요. 이번이 마지막이야.”'발악하듯 말을 뱉어 내곤 연경은 현관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맨몸으로 나온 연경은 정처 없이 거리를 걸어 다녔다. 막막하기 만한 현실에 이제야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아주 어릴 적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종종 거리며 따라간 집. 마당엔 어린 연경도 눈을 뗄 수 없도록 예쁜 장미넝쿨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곳. 그곳이 아버지의 집이라는 걸 알았을 때 연경은 나도 이제 아빠가 생겼다는 기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빠란 존재를 인식하기도 전에 엄마의 고통을 알아 버렸다. '엄마는 사랑을 알기나 할까? 너무도 가여운 그 사랑이 그녀에게는 독이라는 걸 알긴 하는 걸까? 나는 날 사랑해 주고 걱정해 주는 엄마도 있고 잘난 아버지라는 생물학적 인간의 얼굴도 아는데 천지사방 아무도 없는 그녀는 고아였었다. 원장 아버지란 작자는 열여덟의 꽃 같은 나이의 엄마를 풍 맞아 말 못하는 할머니의 수발을 드는 윗방애기로 팔아 버렸다. '똥, 오줌을 받아 내고 고약스러운 할머니를 상대하느라 지쳐 가던 엄마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그 집 큰아들이었다.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에, 얼굴에 바르라고 준 로션을 엄마는 사랑이라 생각했던 걸까? 엄마는 정에 굶주려 그가 내민 작은 손길에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준 것이다. '어느 날 밤 할머니 방에서 언제나 수발을 들던 엄마는 다가오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저어…… 이러지 마세요. 무서워요…….”'“순정아. 네가 너무 예뻐서 그래. 이리와 봐.”'“정말 무섭단 말이에요.”'“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내가 너 다시는 안 보면 좋겠어? 사랑해.”'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너를 사랑한다며 속삭이는 큰아들에게 유린을 당한 것이다. 처음인 엄마의 입을 막아 고통에 겨운 비명 소리를 묻어 버리고 제 욕망에 헐떡이던 그 집 큰아들. 이층에는 제 마누라를 모셔 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여린 여자를 짓밟은 것이다.'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널 사랑해서 어쩔 수 없다는 그 한마디에 자신을 다 내어 준 그 여자가 내 엄마였다. 매일 죽일 듯 노려보는 할머니의 눈을 받아내며 엄마는 밤마다 찾아오는 그 큰아들을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도망갈 수도, 죽을 수도 없었다. 그 큰아들 사랑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