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지나가던 동환의 발길을 잡았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이끌려 동환은 연습실 문을 열고 말았다. 커다란 그랜드피아노 앞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자신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마법의 소리에 취해 여자는 동환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는 듯했다. 음악에 대해 무외한인 동환은 그저 귓가에서부터 자신의 심장까지 두드리는 그 고운 소리에 매료되어 가고 있었다. 더구나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여자가 누굴까 하는 호기심에 쉽게 연습실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휴…….”'완곡을 한 여자가 마법이 풀린 듯 작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 하나하나까지 바라보고 있는 동환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천천히 몸을 돌아서는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동환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에 걸린 미소에 눈이 먼 것인지, 아니면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눈부신 오후의 햇살이 여자의 몸에 비쳐 눈이 부신 탓인지도 모른 채 동환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여자만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여긴 어떻게…….”'목소리도 피아노 소리처럼 곱기만 했다. 흔히 말해 접대용 웃음을 짓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동환은 마치 그 여자가 자신의 여자라도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버렸다. 저 웃음을 가지고 싶었다. 저 여자를……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동환은 고개를 자욱거리며 엉뚱한 상상을 떨쳐 버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갖기엔 너무 곱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자신과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동화 속의 미녀와 야수처럼 느껴지는데.'“무슨 일로…….”'여전히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한 시선을 하고 있는 동환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은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사춘기 소년처럼 얼굴을 붉힌 동환은 바짝 긴장하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저, 저기…… 교, 교양과목…… 윤리…….”'동환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새빨갛게 변해갔고 더듬는 목소리는 잔뜩 억눌린 채 흘러나왔다.'“그럼 강의실 잘못 찾아왔네요. 4층에 있는데. 혹시 윤리 교양과목 들어요?”'또다시 더듬거리며 말할까 싶어 동환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의 물음에 답했다. 열성적인 학생이 선생님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여자와 눈을 마주치며 얘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그럼 같이 올라가요. 저도 그 강의 들어야 하거든요.”'여자의 말에 동환의 얼굴은 또다시 새빨갛게 변해갔고 수줍은 듯 웃고 있는 동환의 곁으로 여자가 지나가면서 쿡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여자의 웃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녀와 함께 나란히 걷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좋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