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릉…… 꽝꽝…… 번쩍.'어둠이 깔린 골목길, 번개를 동반한 비가 세상을 다 쓸어버릴 듯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빛 속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모자를 꾹 눌러 쓰고 몇 년 전에 부도 처리된 공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선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침없이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 문을 여는 순간 어둠과 함께 칙칙한 곰팡이 냄새가 확 풍겨왔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코를 잡았다.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지자 지하실 구석구석에 놓인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썩어 가고 있는 나무판자와 폐타이어들이 널려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어쩐지 지하실의 음침한 기운을 더해 주는 것 같아 남자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그의 시야에 빠르게 도망치는 쥐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징그럽고 더러운 쥐들을 보며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하실에 들어오는 빛이라고는 작게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밖의 조명등이 전부였다. 남자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지하실 안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그때, 어둠을 뚫고 굵직하면서도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빗속에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소.”'일부러 작게 속삭이는 듯 말하는 상대의 탁한 목소리에 남자는 그쪽으로 몸을 틀었다.'“돈이 되는 것이 있다면 빗속이라도 마다하지를 않지.”'남자가 말과 함께 앞으로 다가서려하자 어둠 속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 오지 마시오. 그냥 거기에 계시오.”'상대의 명령에 남자는 또다시 인상을 팍 구겼다. 누가 되었던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게 싫었다. '“의뢰인의 모든 비밀을 보장해 준다고 했으니 나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모자를 눌러 쓰고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려 하지 않는 상대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지난 번 전화로 말했던 부분만 성공한다면 그에 대한 후한 값을 쳐드리리라.”'“후후…… 이미 내 명성은 들어 알겠지만 내가 하는 일에 실패란 없었지.”'상대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의심을 눈치 챈 남자는 약간 뻐기는 듯한 목소리로 일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을 드러냈다.'그러자 이미 상대는 남자의 그런 우쭐함을 알기라도 한 듯 살짝 그의 기분을 맞춰주었다.'“소문을 많이 들었기에 당신을 택한 것이요.”'“그럼, 얘기는 쉽게 풀리겠군. 좋소,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그때까지 계단에 서 있던 남자는 천천히 내려가 지하실 바닥에 섰다. 그러자 어둠 속에 몸을 숨겼던 상대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작은 쪽창 문을 통해 들어오는 불빛이 약해 상대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이 일을 끝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들이었기에. 그걸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은 한참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작은 탁자가 놓여 있었지만 그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들만이 아는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눴다.'그로부터 한 시간 후.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먼저 지하실을 나갔고, 그가 타고 온 듯한 자동차 엔진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그제야 상대방은 천천히 지하실에서 나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