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굴 전면을 스치는 바람이 시리기까지 했다. 겨우 소송 하나가 마무리 지어졌을 뿐인데, 3월에서 12월이라니. 계절에게 꼭 배신을 당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여름이나 가을은 대체 어떻게 지나가 버린 건지. '숨소리인지 웃음소리인지조차도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던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조금은 허무해지고 말았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무는 입가에도 괜스레 쓴웃음이 배어들 만큼. '하지만 이수는 이내 픽 웃어버렸다. 잘 웃고 놀다가 갑자기 이러는 스스로에게 조금은 냉정해지기로 한 것이다. 겨우 계절 변화에 이렇게까지 센티멘털해질 필요가 있을까. 전혀 권이수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계절을 좀 건너뛰긴 했어도 그 덕분에 그가 얻을 수 있었던 게 얼마 만큼이었는지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어제만 떠올려 봐도 웃음은 금세 급조되지 않는가 말이다. '어제는 1년의 반이 넘는 시간동안 힘들게 맡아왔던 대산그룹의 일이 완전히 마무리가 된 날이었다. 훗,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서초동 자신의 사무실을 비워둔 채 아예 마포에 있는 대산빌딩으로 출근을 해가며 회장 이하 주요 간부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산의 장래에 대해 별의별 시나리오를 다 상정해가며 논의를 거듭해왔던 몇 달간의 소송 결과, 어제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수는 대산의 한 간부로부터 거의 극찬에 가까운 평을 들었다. '‘변호사의 역할이 이처럼 중요한 줄 미처 몰랐습니다. 권 변호사님은 변호사라기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비즈니스맨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군요.’ '얼마나 가슴 벅찰 정도로 뿌듯하던지. 24시간하고도 9시간이 더 지나있는 지금에도 그 순간의 기억은 다시금 그의 얼굴에 기분 좋은 웃음을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소송의 결과와 시간의 흐름……. 역시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계절이야 해마다 돌아오는 거고, 그렇게 따진다면 소송의 결과에 따른 기회비용으로선 그다지 크다고 볼 수도 없었다. 결국은 공연한 기분 탓이었던 건가, 하는 결론 앞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같이 웃자, 권이수. 무슨 생각하는데 혼자 그렇게 기분 좋은 얼굴이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가 그를 잠깐 놀라게 했다. 또각또각 다가온 구두 굽 소리도 듣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들 멤버의 홍일점인 아름다운 친구. 앞에 와서 선 연우는 다시 한 번 이유를 물어왔다. '“뭐야, 진짜? 혹시 고새 뉴 페이스라도 생긴 거야? 아니면, 정말 혹시…… 돌아온 내가 너무 반가워서?” '“훗, 전자는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고, 후자는 뭐, ‘너무’ 라는 부사어만 뺀다면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치, 그냥 그렇다고 해주면 어떻게 되니? 정말 인색해, 너.” '섭섭한 듯, 아닌 듯, 눈을 살며시 흘기며 웃는 연우에게 이수는 손을 내밀었다. '“훗, 돌아온 걸 환영한다, 하연우. 1년만인가,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