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지혁의 눈동자는 아까부터 빨간 방울을 단 여자아이로부터 떠나지 않고 있었다. 어리다고는 하지만 이제 막 열다섯. 이성이 뭔지 서서히 느끼기 시작한 그는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더 크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육상선수의 꿈을 가진 남자였다. '지혁은 한차례 달리기 연습이 끝난 직후, 숨을 고르기 위해 어느 한곳에 시선을 두었다가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 네 명의 여자아이들에게 못박혀버렸다. 네 명의 여자아이들이 방과 후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둘이서 짝을 지어 고무줄을 하고 있었다. '둘은 검은색 고무줄을 허리에 걸쳐 놓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고, 나머지 둘은 짝을 이뤄 똑같은 동작으로 줄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중키에 통통한 몸매를 가진 여자아이가 지혁의 눈을 사로잡았다. 바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같은 반이었던 하은주였다. 그의 검은색 눈동자가 그녀의 움직임을 좇아 열심히 눈을 빛냈다.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가다가 설탕을 싣고서 엄마 방에 있는 우리아가한테 갖다 주러 갑니다.”'네 명의 여자아이들이 저마다 호흡을 맞추며 고무줄놀이에 맞춰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저마다 뭐가 그리도 중요한지 반 친구들은 이미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잊었나보다. '지혁은 그중에서도 공부에 전혀 관심 없는 은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언제 봐도 늘 활기찼다. 남들은 공부와 성적경쟁에 휩싸여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속 깊은 말 한마디 털어놓는 것을 꺼려했다. 언제나 중요한 정보는 소위 상위등수의 아이들만이 독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혁도 그들과 더불어 조심스러우면서도 늘 거리가 있는 말로 그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했다. '“은주야, 잘한다.”'이미 한 명이 고무줄에 발이 걸려 중간에 뛰는 것을 포기하고 고무줄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지금 이 놀이를 주도하고 있는 건 빨간 방울을 나풀나풀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하은주였다. 지혁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이미 허리단계를 통과한 은주가 겨드랑이 부근까지 올라간 고무줄을 타고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중간고사까지 앞으로 한 달 정도 남아 있었으니 조금 여유를 부리는 것도 괜찮겠지. '지혁은 어느새 말라버린 땀을 또다시 닦으면서도 그녀에게로 쏠린 관심을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야, 강지혁, 뭐해?”'같은 중학교 대표선수인 3학년 형이 연습 중에 지혁의 바로 옆에서 발을 멈췄다. 그가 은근슬쩍 지혁의 시선이 머무른 곳에 같이 시선을 두었다. '“뭐야, 여자애들 고무줄 하는 거 보고 있었어?”'잠깐 코치가 한눈을 파는 사이 그들도 덩달아 한눈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 그들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혁은 이 원치 않은 방해자 때문에 눈빛이 까칠해졌다. '“아니에요. 그냥 눈에 띄기에…….”'“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야, 애들이 제법 예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