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육중한 무게의 현관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8시 뉴스를 보고도 9시 뉴스의 아나운서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던 박 사장과 다소곳한 자세로 과일을 깎고 있던 전철 씨, 그리고 유학 중 방학을 틈타 잠시 한국에 들어온 명수의 시선이 현관문으로 향했다.'쿵! 쾅! 쿵! 쾅!'조금 전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면서 현관문이 부서지길 바란 장본인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발소리에 반딱반딱 윤이 나는 마룻바닥이 때 아닌 고문을 당하고 있다.'“윤지인! 너 집에 어른들 계신데 그게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아니나 다를까 박 사장의 언짢은 기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가시 박힌 목소리가 거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전철 씨는 사과와 과도를 든 채로 얼어붙었고, 명수는 무슨 일로 여동생이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리는지 궁금한 얼굴이었다. '“우리 지인이가 밖에서 화나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환이 하고 싸웠니?”'곧 폭발할 것 같은 마나님과 어린 공주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전철 씨가 어색한 미소를 띠우며 물었다. 이런 아버지의 노력을 눈곱만큼이라도 생각해 준다면 평소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잘못했다고 말할 지인인데 오늘은 무언가 예사롭지가 않다.'“너, 지금 아버지 말을 무시해?”'박 사장의 매서운 눈초리에 명수조차 과일이 꽂혀있는 포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파혼할 거야!”'콰광!'지인의 폭탄선언에 이제는 박 사장도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사슴 같은 눈망울로 입술을 콱 깨문 지인은 손가락으로 쿡 찌르기만 해도 대성통곡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파, 파혼?”'“여보, 우선 진정하고. 명수야, 가서 청심환 가져와.”'분부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는지 명수는 벌떡 일어나서 곧장 모든 구급약품과 의약품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너, 너, 윤지인. 이리 와서 앉아. 앉아서 얘기해.”'어르고 달래는 남편 덕분인지 박 사장은 겨우겨우 흥분한 마음을 추스르고 딸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오늘은 지인이 삐딱선을 타기로 작정을 했는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지인아, 막내야? 앉아. 얼른 앉아.”'또 다시 두 여자의 신경전에 전철 씨가 중재에 나섰다. 아, 이럴 때 장녀 미인이 있었다면 이 상황에 대처하기가 조금 더 수월했을 것을.'“꽃도 없어! 케이크도 없어! 선물은 눈을 씻고 봐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