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호텔이야.”'진경은 미친 듯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술을 먹고 모텔도 아닌 호텔에 들어올 정도로 간이 부은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아무리 취해도 집 밖에서 외박을 해본 적은 엠티나 수학여행을 빼고 없었다.'이건 꿈이어야 했다. 정녕코 현실이었다가는 목숨 줄을 내놓았다는 증거일 뿐이다.'“아니라고 해줘요.”'진경이 울 듯 인상을 찌푸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간절히 말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불을 걷어 그 안을 살폈다. 뭘 의심했는지 빤한 행동에 뒤늦게 건우의 눈치를 살폈지만 호텔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에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까지 자각되고 말았다.'“책임져야 하나?”'딱딱해진 그의 말투에 진경은 다시 시트를 들춰 확인했다. 옷을 다 입고 있는데……. 설마 일을 치르고 다시 옷을 입혔다면!'생각은 바로 표정으로 나타났다. 진경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자동으로 색을 달리했다. 연애도 제대로 못한 그녀가 술김에 사고까지 친 모양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멋있는 사랑은 못할망정, 의식도 없이 일까지 치렀다면 정녕 얼굴 들고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느낌이 이게 아닌데…….’'성적으로 경험은 없지만 무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인은 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가 불쾌해 할지라도 확실한 것이 좋았다.'“책임질 일…… 했어요?”'침착, 침착해야 하는데 진경은 노골적인 말로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약부터 먹어.”'건우가 아스피린을 내밀며 턱을 까딱거렸다. 당황한 그녀와 달리 그는 지극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얄미울 정도로.'“얘기부터 해요.”'“고집부리지 말고 어서 먹어. 속 아프고, 머리도 지끈거릴 텐데. 아픈 것 참는 일은 미련한 짓이야.”'‘쳇! 내 속에 들어와 본 사람처럼 구네.’'진경은 건우가 내미는 약과 물 잔을 받아 약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플라세보효과(placebo effect)가 있는지 약을 먹자마자 그녀를 징그럽게 괴롭히던 두통이 미약해지는 것도 같다. 진경은 입가에 묻은 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도전적으로 그를 응시했다.'“이제 말해요.”'“뭘?”'“우리…… 아무 일도 없었죠?”'“아무 일이 뭐지?”'애인도 있는 것 같은데 무대포로 돌진했던 그녀가 사고마저 쳤다면 어째야 하는지 앞이 막막했다.'“아무 일을 했다면?”'“책임 못 진다면서요? 기억에 있다면 모를까,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 책임 운운할 생각은 없어요. 뭐 성인이니까요.”'“성인? 그 말이 자신에게 걸맞다고 생각하나?”'“그럼 내가 성인이 아니면…… 됐어요, 신세 많았습니다.”'갓 깨어났을 때의 친절은 마치 꿈인 양 그의 말투는 변해 있었다. 그녀가 말을 하면 시비를 걸 듯 삐딱하게 되받아치는 모습에 괜히 서글픔이 밀려들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말한 책임질 사고는 없을 것이다. 당황함에 시트를 걷어본 것과 혹시나 해서 확인해본 것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찬찬히 생각해보니 사고를 쳤다면 후유증이 있어야 한다. 술을 마셔 편하지 않은 속과 지끈거렸던 머리처럼. 하지만 통증은 육체가 아닌 가슴에서 일었다.'“……아무 일,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