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의 높이가 해발 837미터에 이른다. 그녀의 발아래에 넓게 펼쳐지는 푸른 계곡과 시가지들이 한눈에 사로잡힌다. 북한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세상은 또 다른 세상으로 다가왔다. 눈을 감고 고개를 위로 젖힌 채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상쾌한 공기가 그녀의 엉망진창인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었다. '“아하! 참 좋다. 이 기분으로 여기까지 올라오는 거지.”'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감돌았지만 어느 순간 눈빛이 매서워지면서 입 끝이 아래로 축 처져 내려갔다. '“흥! 두고 봐! 꼭 이 원수를 갚을 테니까.”'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눈길이 고양이처럼 사나워졌다. 양손을 허리에 대고 양다리를 넓게 벌린 채 짧은 커트머리를 바람결에 휘날리고 서 있는 모습이 위풍당당한 개선장군 못지않았다.'3월 초!'봄의 길목에 있는 꽃샘추위로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처음 산에 올라오는 길목은 몸이 사정없이 떨렸지만 1시간도 채 안 돼서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겉에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어버려야만 했다. 머리에 한 붉은 띠는 땀으로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벼랑 끝에 앉아 발을 흔들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은 파란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기에 넘치던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치잇! 내 눈에 먼지가 들어갔나?”'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까짓 인간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는 자체가 억울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옆에 놔둔 배낭을 열고는 사과를 꺼내 바지에 쓱쓱 닦아서는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사과의 단물이 입 안 가득 향긋하게 감돌면서 아삭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내 사랑도 이렇게 달콤했는데…… 날 차버려? 그 년이 어떤 년인지 내가 기필코 확인을 해봐야지. 하긴 머리를 쥐어뜯어 놓기는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지. 날 차버린 걸 후회하게 만들어버릴 거야. 더 멋지고 잘난 여자가 돼서 그들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서…… 나타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지? 어쨌든 두고 봐! 여자의 한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고 말테니.”'사과를 먹고 남은 씨 부분과 꼭지부분을 있는 힘껏 멀리 던졌다. '“아가씨! 대단한데. 여자치고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을 내가 별로 보지 못했는데. 거기다 혼자 온 것 같고. 마음이 있어도 용기와 체력이 딸려서 도중에 포기하는 게 대부분이거든. 아직 학생인가?”'“아뇨. 올해 졸업했어요.”'“그래. 인생도 산에 오르는 것처럼만 하면 어떤 힘든 역경도 꿋꿋하게 버텨나갈 수 있지. 요즘 경제가 안 좋아 실업률이 높은데 힘내게. 평일에 여기에 혼자 온 거보니 힘든가보군. 힘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