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감은 눈매에 아련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마늘쪽 같은 코는 정중앙에 자리 잡아 얼굴의 중심을 세웠고, 혈색 좋은 뺨은 건강함을 드러냈으며, 앵두보다 붉은 입술은 살짝 벌어져 달콤한 숨을 뿜어냈다. 섬섬옥수 고운 손은 곱게 포개 귀 밑에 붙이고, 동그란 어깨가 살포시 오르내리는 양을 보아하니 아직 단잠에 빠져 있음이다. '당금은 어려 아직 보송보송한 솜털이 나 있지만 크면 이 근동에 다시없는 미색이 될 것이 분명했다. 태루는 서너 명의 벗과 함께 방문한 지기 해원의 집에서 다른 이들이 대국에서 들여왔다는 새로운 서책에 대해 논하는 것을 듣다가 골치가 딱딱 아파와 슬그니 자리를 떴다. 그러다 우연히 안채로 통하는 일각대문을 발견했고, 저를 지켜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하자마자 지체 없이 그 안으로 들어섰다.'제 집 안채가 그러하듯이 이 댁 안채도 별다를 것은 없었다. 사랑채와는 다른 아기자기함이 그랬고, 안주인의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화단이 그랬다. 그러나 제 집과는 다른 두근거림이 있어 태루는 조심스런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그러다 간 크게도 주위를 살피고, 기척이 없어 안채 대청마루에까지 올라섰다가 잠이 든 규중처자를 발견한 것이다. 아직 처자라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두어 해만 기다리면 필시 사내 가슴 여럿 멍들이고 울릴 단순호치(丹脣皓齒. 여자의 썩 아름다운 얼굴을 이르는 말)가 될 터였다. 태루는 아직 여인은 아니나 그 어떤 여인보다 저를 끌어당기는 소녀에게 제 구순을 내려 무엄하게 허락도 없이 냉큼 도장을 찍어버렸다. '“내 주인 허락도 없이 이적에 이 앵도를 머금었으나, 머지않아 이 앵도의 주인이 저가 될 것이기에 오늘 그대에게 사죄의 말은 하지 않을 것이오. 나의 죄라면 지기 댁 안채에 허락도 없이 든 것이고, 그대의 죄라면 너무 아름다운 것이오.”'태루는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곳에서 소녀에게 속삭이고는 엉큼한 손을 내려 비록 치마 위지만 아직 여물지 못한 가슴까지 무엄하게도 쓱 훑어 내렸다. 남녀가 하 유별한 시절이나 이미 잠들어 있는 여인을 제 짝으로 콕 점 찍어버렸으니 별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태루가 잘생긴 얼굴에 한껏 웃음을 피워 올리며 혼자 흐뭇해 하고 ‘이대로만 자라소’ 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후 아기씨! 아기씨!”'“이크!”'죄가 있는 태루는 대경실색해 곁에 내려놓은 태사혜 집어 들고는 그 인기척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항아님을 깨우기 전에 급히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나 양상군자 같은 제 처지도 모르고 눈을 돌려 제가 점찍은 제 반려를 다시 한 번 눈에 새기는 일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