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린은 문득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른다. 처음에는 주변 사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이내 그녀는 주변이 먹물처럼 암흑에 물든 이유가 한밤중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설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둠에 눈을 적응시켰다.'“여긴 어디지?”'제일 먼저 엄습하는 감정은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 버린 자신에 대한 동정심과 진한 외로움, 두려움이었다.'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람은커녕 그 흔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진공상태 같은 공간. 설린은 순간 덜컥 겁이 났다.'“나 설마 죽은 건가?”'하르샤를 따라 무작정 이곳에 왔지만 그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하기야, 그를 만났을 때조차 그가 어디 사람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조차 알지 못했었다. 그때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많은 부분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아쉬웠다.'“그를 찾을 수 있을까?”'조용한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 속에 섞인 절망감이 부메랑처럼 다시 그녀에게 되돌아와 심장을 반 토막 내 버렸다. 가족까지 내팽개치며 호기 있게 왔건만, 어느새 용기는 전부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미련과 작은 후회뿐이었다.'“엄마…….”'억눌러 놓았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터져 나오자 설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기현아, 미안해…….”'항상 티격태격하던 동생도 다시는 볼 수 없다. 과감한 선택은 뜻밖의 아픔을 진하게 남겼다.'“다시는 볼 수 없겠지?”'그리운 가족의 얼굴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다정했던 엄마도, 하나밖에 없는 동생 기현도,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아버지도.'생각만으로도 위가 오그라드는 것 같아 설린은 몸을 새우처럼 구부렸다. 또다시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지로 억누르는 그녀의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한참 동안 그 자세로 있던 설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벌써부터 약해지면 안 돼.”'설린은 스스로에게 다짐을 거듭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뒤를 봐 주며 방패막이가 되어 줄 사람도 전혀 없다.'“이러면 안 되는데…….”'설린은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볼을 타고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설린은 불현듯 낯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들은 그녀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금세 문을 열었고, 희미한 불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깨어났구나?”'“괜찮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