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폴리니는 아름다웠다. '나는 오래도록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여신처럼 등을 덮은 검은 머리카락과 길고 가냘픈 목선이 우아한 백조를 연상시켰다. 발레를 전공한다니 자연스레 그렇게 매치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펜으로 정교하게 그린 듯 커다랗고 또렷한 눈매에 흑진주처럼 새까만 눈동자를 본 순간, 가슴 속에 따뜻한 지중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내 마음을 빼앗아 달아나 버렸다. '「콘라드의 딸이라니 아까운걸.」'나도 모르게 탄식처럼 말이 나왔다. 나는 입술을 모아 휘파람을 휘익 날리며 정원에 놓인 하얀 플라스틱 의자에 다리를 길게 드리우고 앉아 절벽 아래로 펼쳐진 지중해로 시선을 던졌다. 정보에 의하면 콘라드는 내가 자신의 딸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걸 알고 히트 맨인 에반에게 의뢰를 했다고 한다. '킥, 시니컬한 웃음이 잇새로 새어 나왔다. '「약은 자식.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데! 후후.」'에반에게 딸을 보내면 내가 죽일 수 없을 줄 알고? 쯧쯧.'나는 콘라드의 속 보이는 수작이 한심스러워 혀를 끌끌 차며 손끝으로 사진 속 안나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마음에 들어.」'나는 사진 속 그녀의 입술에 쪽 입맞춤을 했다. 안나 폴리니는 여전히 방긋 웃고 있었다. '「어디, 날 만나고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지 볼까?」'나는 사진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 뜰에 있는 풀장으로 갔다. 그리고 풀장의 낮은 다이빙대로 걸어가 그 끝에 서서 두 팔을 양 옆으로 곧게 벌리고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가볍게 몸을 날렸다. 공중으로 박차 오를 때의 희열은 허공에서 회전시킨 몸이 물 속으로 내리꽂히는 순간 극대화된다. '쿠르릉!'요란한 물거품이 겨드랑이와 무릎,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며 내 주위로 수많은 물방울을 만들어 냈다. 한참을 헤엄쳐 풀장 중간쯤에서 고개를 밖으로 내밀자 머리 위에서부터 주르르 흘러내린 물이 한낮의 더운 열기를 식혀 주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풀장의 물이 넘실거리며 수정 같은 물비늘을 만들어 냈다. 나는 느긋하게 물 위에 드러누워 살짝 눈을 찌푸리고 이글거리는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내 안의 악마성을 부추기는 태양.'험난한 인생 여정에서 항시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던 붉은 태양. '나는 저 타오르는 태양의 분신이며 ‘마(魔)의 아들’ 제이다. '바람이 불자 테이블에 놨던 사진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내가 있는 풀장 안으로 날아왔다. 물 위로 추락한 사진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내 쪽으로 흘러왔다. 손을 뻗어 안나의 사진을 들어올린 순간 내 입가에 빙긋 미소가 어렸다. '에반이 무슨 생각으로 이 여자를 떠맡았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런 다음 안나를 죽여도 충분하리라. 휙, 사진을 물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나는 풀장 밖으로 헤엄쳐 나왔다. '「쥔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