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정리된 방 안, 화장대 앞에서 스킨을 바르던 진규가 희수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건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통보였다.'“이달 말이 어머니 생신이니 선물 준비해.”'‘오늘은, 우선 지난번에 받은 알바 마무리지고 다시 일자리 알아봐야하는데.’'“듣고 있는 거야?”'‘또 짜증낸다.’'대답 없는 희수에게 진규가 다그치듯 물어오자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희수가 진규를 바라보았다.'“어떤 걸로 준비할까요?”'“준비고 나발이고 그 표정 어떻게 안 되겠어?”'비어있는 희수의 눈동자가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원래도 짜증을 내는 성격이었지만 오늘은 더욱 신경에 거슬렸던 모양이었다.'“네?”'“인생 다 산 것 같은 그 심드렁한 표정 말이야. 보는 내가 더 짜증스러워진다고!”'진규는 희수의 손에서 손수건을 빼앗듯 현관으로 나가자 희수가 의미 없는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짜증스러워진다고?”'‘짜증스럽겠지. 사랑해서 결혼한 것도 아니니까. 그럴 만도하지.’'긴 한숨을 내쉰 희수가 맑게 게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결혼한 지 이제 6개월이 된 신혼부부인 희수와 진규. 다른 사람들은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지만 희수와 진규는 조금 다른 조건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다른 조건, 즉 계약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아픈 홀어머니를 부양할 여력이 없던 희수와 지금까지 어머니의 말을 거스른 적 없다는 착한아이 증후군을 가진 진규와 계약을 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어머니가 맺어주는 여자대신 결혼하는 조건이었고 희수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간병 비를 내주는 조건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었다. 희수에게 병원비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대학 졸업을 며칠 남겨둔 어느 날 엄마가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하게 된 엄마는 위암말기 진단을 받았고 엄마의 병원비를 내기위해 힘들게 장만한 집까지 내놓아야했다. 학교를 졸업직후 알바란 알바는 죄다 뛰면서 하루에 2시간이상 잠을 자본적이 없었다. 그러다 진규를 만나게 되었다. 애인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던 희수는 진규와의 첫 만남부터 어머니를 만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비싼 수당에 넘어간 게 잘못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이어진 아르바이트로 진규를 만났고 한잔 두잔 마신 술에 취해 엄마얘기를 하고 말았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당신 어머니 병원비와 간병 비를 내주겠어. 단, 당신이 나랑 결혼하는 조건에 한해서야. 어때? 해보겠어?”'“네?”'진규의 말에 희수는 술이 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당황한 희수가 진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