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둔 추운 겨울, 인천 국제공항에는 비행기를 타려는 탑승객들과 승무원들로 북적거렸다. 그런 공항 안의 구석진 벤치에, 핑크색 알파카코트를 입고 생머리를 늘어뜨린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귓가에 대고 있는 휴대폰에 말하기 시작했다.'“민혁 씨, 나 지금 공항에 도착했어.”'[미안해. 오늘은 꼭 배웅하고 싶었는데…….]'“괜찮아. 민혁 씨 바쁜 거 뻔히 다 아는데, 내가 이해 못 할까 봐? 그리고 우리가 뭐 영영 헤어져?”'진심이 느껴지는 민혁의 말에, 해인은 그를 배려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말했다. 평소처럼 발랄하고 애교스런 말투로.'[그렇긴 하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네가 보고 싶어서 그러지.]'“어머! 민혁 씨가 웬일이야?”'사랑하는 사이였어도 민혁은 이상하게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랬는데 그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내자, 해인이 놀라서 물었다. '[글쎄. 하여튼 몸 조심히 잘 다녀와.]'“알았어. 민혁 씨도 나 없는 동안 몸 조심히 잘 있어야 돼. 여자도 조심하고…… 민혁 씨는 내 거야. 알지?”'[하하하. 그럼 잘 알지. 나 최민혁은 유해인 거라는 거.]'“음, 좋았어! 나 이제 비행기 타면 민혁 씨 목소리 못 듣겠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전화할 테니까 기다려. 아참! 아니다. 한국은 새벽이겠구나.”'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서일까. 해인은 종달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말했다.'[아니야. 언제든지 네가 전화하면 받을 테니까 전화해.]'“정말? 정말 그래도 돼?”'해인은 미국에 도착해서 통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쁜 나머지,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오늘은 나도 네 목소리 들어야 잠이 올 것 같으니까, 꼭 전화해. 기다리고 있을게.]'“정말이다. 나랑 약속한 거야! 내가 전화하면 언제든지 꼭 받아야 돼!”'그에게 다짐을 받고 싶은지 해인은 계속해서 말했다.'[응. 그럴게.]'“민혁 씨, 나 이제 들어가야 돼. 갔다 올게.”'[해인아! 사…… 아니다. 잘 갔다 오라고.]'“알았어. 아쉽지만 이제 끊어야겠다. 갔다 와서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