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저씨 은근히 엉큼하네.”''날카롭던 그의 눈초리가 그녀의 얘기를 듣는 동안 서서히 멍해져갔다. 이거다, 이거야. 여주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패닉상태에 빠져 있는 윤성을 마구 몰아붙였다.''“정말 많이 굶었구나, 아저씨.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줄도 모르고.”''“뭐, 뭐요?”''여자라는 생물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다. 법적으로 당당히 성인이 된지 어언 12년. 여자도 만날 만큼 만나고 즐길 만큼 즐겼었지만 윤성은 이런 부류의 여자는 생전 처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착각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일까.''“하는 수 없으니 보내줄게요. 대신, 밤에 내 생각하면서 휴지랑 의형제 맺으면 안돼요, 아셨죠? 그럼 안녕히 가세요.”''깔끔히 돌아섰다. 여주는 적당한 속도로 하얀 대문 앞까지 걸어가면서 초조하게 얼굴을 찡그렸다.''‘불러라. 제발 딱 한 번만 불러. 튕기지 않고 뒤돌아 줄 테니까 한 번만!’''대문 앞까진 넉넉히 잡아야 다섯 걸음이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다리가 무거웠다. 이제 대문 앞까지 두 걸음.''“이봐요.”''나이스! 그렇지, 너라고 별 수 있냐. 나의 덫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덫이 아니라고. 여주는 느릿하게 생긋 웃으며 돌아섰다.''“아직 못한 말이라도?”''대사 좋고. 자, 이제 극본대로 나의 대사를 받아 쳐줘. 대사를 까먹은 주인공이 애드리브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건 지금 상황에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빨간불을 켜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여주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아줌마가 좀 전에 했던 말, 아줌마의 허황된 망상이라고 하면 믿을 겁니까?”''누굴 또라이로 아나. 아니라고 안 해도 아닌 것 안다. 이번 만남까지 합쳐 두 번. 두 번 다 거지꼴을 하고 만났는데 그런 여자한테 성적 욕구를 느꼈다면 그 남잔 진정한 싸이코가 아니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또라이가 되련다. 여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빡거렸다.''“무슨 말씀이신지?”''“해 봅시다. 동거라는 거.”''그렇지! 여주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윤성의 오른쪽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았다. 그렇지 않아도 잘생긴 미남이 뜻대로 잘 따라와 주기까지 하니 더 잘 생겨 보였다.''“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잘 생각했어요!”''“단.”''단? 의아한 눈빛으로 윤성을 올려다보자 그는 짓궂은 미소를 뽐내며 여주의 손 위에 나머지 한 손을 올렸다.''“동거를 먼저 제안한 건 아줌마니까 뒷일은 책임 못 집니다.”''윤성의 손에 붙들린 자신의 손을 냉큼 뺀 여주는 두 손으로 가슴 위에 엑스 자를 만들었다. 이 남자 대체 뭐, 뭐라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