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었으나 그 계절이 무색하리만큼 더운 날이었다. 개들도 짖지 않는다는 삼복과 진배없는 무더위 속에 시전(市廛) 행수 조창이의 집에서는 때 아닌 소란이 일고 있었다.'“서. 서라고. 한 발만 더 다가오면 내 손에 아작 날 줄 알아.”'심덕은 싸리비를 다부지게 휘두르며 사람들을 위협하였다. 도치가 가소롭다는 듯 그녀의 손에 들린 싸리비를 잽싸게 낚아채 마당으로 내동댕이쳤다. 땀이 비 오듯 하는 육중한 몸과는 달리 그의 행동은 제법 날렵했다. '“확인을 해 보자는데두.”'도치의 눈빛은 먹잇감을 앞에 둔 승냥이의 그것처럼 살벌했다. 심덕이 상단(商團)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년이었다. 그런 자가 선임(先任)들을 모두 제치고 창이의 신임을 단단히 받고 있는데다 창이가 대행수가 되면 그녀가 그 뒤를 이어 행수가 될 것이라는 억측이 흉흉하게 돌고 있었으니, 행수 자리는 당연히 저의 것이라 자만하고 있던 도치가 그녀를 눈에 가시인 듯 여기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였다. '“확, 확인은 무, 무엇을 확인한다는 것이냐?”'“네가 계집이 아니라면 어디 그 바지춤을 내려 확인을 해 보잔 말이다.”'“내, 내가 계집이라니? 실성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내 어디를 보아 계집이라는 것이냐?”'심덕은 목소리를 더욱 굵게 하여 호통하였다. '“네놈이 계집처럼 야들야들 했다면 내 진즉에 너를 덮쳤지 1년이나 가만두었겠느냐?”'도치는 굵은 입술을 두꺼운 혀로 핥으며 음흉한 눈을 위로 치켜떴다. 그녀는 놈의 육중한 뱃살이 그녀를 덮치는 모습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눈을 부라렸다. 상단살이 십 수 년에 눈치 하나는 도사급인 도치가 그런 그녀의 행동을 놓칠 리 없었다. 그런 행동은 계집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네놈 색정이야 온 도성이 다 아는 사실이다만 사내에게까지 더러운 욕정이 동하는 줄은 미처 몰랐구나!”'그녀가 지지 않고 되받아치자 도치의 늘어진 볼 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너의 실체를 반드시 밝히고 말겠다는 듯 소발바닥 같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그러니 확인을 해 보자는 것이 아니냐?”'도치의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뿜었다. 그녀는 그의 눈 가득 넘쳐흐르는 살기를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곳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도치의 판단은 언제나 그렇듯 그녀보다 빨랐다. 그의 지시를 받은 상단 일꾼들이 그녀에게로 우르르 몰려들어 그녀의 옷을 막무가내로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온몸으로 저항했지만 사내 여럿을 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누군가의 손에 저고리 고름이 뜯겨져 나가고 앞섶이 벌어짐과 동시에 가슴을 가리고 있던 새하얀 천이 물색없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심덕이 황급히 옷자락을 여몄지만 진실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 후였다. 사내들의 얼굴로 당혹감과 함께 묘한 번들거림이 지나갔다. 도치는 입 안 가득 고인 침을 보란 듯이 삼키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서. 너 이 자식, 한 발만 더 움직이면 죽여 버릴 거야.”'“죽여? 어떻게?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