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될지도 모른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지연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주먹을 필요 이상으로 움켜잡았다. 지연의 옆에 있어야 할 석주는 고급스런 소파에 앉아 술잔을 비우며 맞은편에 앉은, 치마 길이가 속옷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웃음을 터뜨렸다.'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으나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있다는 것 자체도 잊은 듯 보였다. 지연은 인상을 쓰며 두 사람을 보는 나이 지긋한 노신사의 눈길에 미간이 찡그려졌다.'손에 쥐고 있던 티켓에 땀이 묻어날 것 같아 지연은 핸드백을 열어 표를 집어넣은 후 얌전히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가 없는 곳이라면 아무 상관이 없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미 석주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같았다.'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지연 역시 힐끔거리고 있었다. 지연이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석주의 바로 옆까지 걸어갔지만 그는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비행기가 결항된다는 방송이 나왔어요.”'“뭐?”'돌아선 석주의 잘생긴 이마에 획이 하나 그어졌다. 그가 공항에 오기 전에 자신의 사생활을 방해하면 재미없을 거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라 지연의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아났다.'“비행기가…….”'“부인이신가 봐요?”'석주의 앞에 앉았던 여자가 꼬았던 다리를 내렸다. 그 바람에 그녀의 치마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오히려 그것을 보여 줄 요량으로 움직인 것 같아 지연의 고개가 먼저 살짝 돌아갔다.'“꺼지고 수속 시작하면 와!”'지연은 고개를 내저으며 작게 말했다.'“미안하지만 저쪽에 아는 분이 몇몇 있어요.”'“제기랄, 일이 꼬이려고 작정했군. 그러게 왜 따라온다고 그랬어?”'석주의 목소리 톤이 고음으로 올라가자 지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원한 적 없어요.”'지연의 대꾸에 석주의 눈썹이 포물선을 그리며 휘어졌다.'“브라질에 가서 보자고.”'지연은 작은 돌기가 다시 온몸에서 솟아나자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뒤로 물러날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아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자리 좀 비켜 주실래요?”'“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