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참 좋다. 싸늘하게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동장군은 시작도 않았다는 경고를 하는 것 같지만, 인도를 톡톡 딛고 전진하는 발걸음이 모처럼 가벼웠다. 오랜만에 화사한 화장을 했다. 졸업을 하고 햇수로 3년이 된 건가? 세월의 빠름을 입으로는 매번 중얼거렸지만 되짚어 보자 더욱 새삼스러웠다.'행복 웨딩홀.'청첩장에 자세히 그려진 약도대로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웨딩홀이 보였다. 동화책에서나 봤을 법한 회색빛 건물 앞에는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웨딩 카까지 주차되어 혼잡스러웠다. 규희는 가지런히 빗어 내린 머리를 손으로 매만지며 웨딩홀 입구로 들어섰다. '‘축 결혼’ 이라고 쓰인 커다란 화환 몇 개와 민영과 유현 선배의 웨딩촬영 사진이 보이자 규희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그려졌다.'“왔냐?”'회색의 턱시도를 입은 유현이 그녀의 팔을 살짝 잡으며 알은체를 했다. 평소와 달리 한결 커 보이는 키 때문에 규희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얀마, 꼭 무안을 줘야 하겠냐? 그래, 오늘 나 키높이 구두 신었다. 민망해 죽겠네. 보는 사람들마다 한 소리 하는데 내가 왜 이걸 신었나 잔뜩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후후, 선배 멋있어요.”'“입술에 침은 발랐냐?”'“지금 바를까요?”'“됐네요. 참 민영이 대기실에 있다. 아까부터 너 안 보인다고 벼르고 있더라.”'“제가 늦었죠?”'“당연히 늦었지. 제일 친한 놈이 안 나타난다고 아침부터 입술이 댓발은 나왔더라. 얼른 가봐.”'“네, 선배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진심이라는 말 안 써도 된다. 얼굴에 후련하다는 기색이 만연한데, 뭘.”'유현의 씁쓸한 어투에 규희는 시선을 구두코로 내렸다. 뭘 말하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알은체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라는 것을 염두에 둔 침묵이었다.'“하여간, 뭔 말을 못한다니까. 어서 가 봐라.”'“네, 행복하세요.”'“그래, 누구 배 아프게 아주 행복할란다.”'“정말 그러셔야 해요.”'“그래.”'아직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유현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규희가 돌아서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던 유현이 잠시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짓다가 빠르게 규희에게 다가갔다.'“송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