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그 남자가 너한테 이제 헤어지자고 했다고?”'유라가 버럭 기함을 했다. '“응, 팡다야, 이제 나 어떡하면 좋아아아아!”'모기처럼 앵앵거리는 목소리로 혜선이 신 새벽부터 찾아와 징징 눈물 바람을 하느라 유라는 그만 뒷골이 따발총을 정조준해서 쏘듯 쿡쿡쿡 쑤셔 오고 있었다. '사실 어젯밤 늦게까지 회식 자리를 지키고 있던 터라 유라는 아직 그때 마신 술이 제대로 깨지도 않은 상태였다. 우우욱, 저만치 거부할 수 없는 멀미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고 할까?'현재 동네 어귀에서 자그마한 한양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라는 일 년에 한 번 친목을 도모하는 회식으로 주변 상가에 달려 있는 유도, 검도, 쿵푸 도장 관계자들과 ‘무도인의 밤’ 이라는 행사를 주관했다. 적극적인 성격의 그녀인지라 어젯밤 ‘무도인의 밤’ 행사를 주관하며 온갖 음주가무를 즐긴 뒤라 당연하게도 머리 꼭대기까지 차도록 술을 마셨더랬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취미 삼아 한 잔씩 두 잔씩 마신 술이 이제는 어느 새 여느 남자 못지않게 센 그녀였다. 하지만 추풍에 낙엽 떨어지듯 여기저기 하나 둘 남자들이 툭툭 떨어져 가는데 그녀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그들이 마신 총 양이 맥주 세 박스에 소주 두 박스이니 코가 홱 안 비뚤어진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 결과 지금도 영 알딸딸 눈앞에 이름도 모를 온갖 잡새들이 짹짹거리며 시끄럽게 구는 통에 영 제 정신이 아닌 그녀였다. 하지만 동도 트기 전인 이 신 새벽에 급하게 택시 타고 멀리에서 달려온 10년 지기 친구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른 일도 아니고 근 1년 간 잘만 사귀어 온 남자친구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았다는데! '어느 새 눈물범벅이 된 혜선을 보니 유라 역시 마음이 아팠다. '“그 남자 바람피우는 거니?”'“모르겠어.”'혜선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바람에 뽀글뽀글 파마머리가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그렇게 착하기만 하던 사람인데…….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헤어지자니……. 내가 뭘 잘못했나? 아아아아! 팡다야, 나 못 살겠다아아아!”'혜선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지금 혜선이 하는 모습을 보면 유라는 당장에라도 한강으로 뛰쳐 갈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혜선이 만날 때마다 자랑을 늘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그녀의 남자친구는 아직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일단 혜선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얼마나 그를 좋아했는지 익히 들어 아는 유라였다. 그렇기에 지금 일방적인 결별 선언을 받은 혜선의 심정이 어떨지 누구보다 이해가 가는 그녀였다. '생각해 봐라. 기념일이면 기념일마다 이벤트를 좋아하는 혜선은 꽃이며 초콜릿이며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