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은 호영의 품에서 벗어나 뒤돌아서서 아파트 입구 쪽으로 향하다가 입구에 서 있는 현욱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현욱과 아는 사이냐고 묻는 호영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하윤은 호영을 보낸 후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 안은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외에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하윤은 얼굴을 찌푸리며 천천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와 현욱이 함께 사용하는 방.'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자 현욱은 창밖을 바라본 채로 뒤돌아보지도, 어떤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그녀 또한 말없이 욕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기 직전에 현욱의 입이 열렸다.'“너, 지금 이 시간까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가 들어왔으면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할 말, 없어요.”'“뭐?”'현욱이 홱 뒤돌아서서 그녀를 노려봤다. 하윤은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욕실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욕실의 문을 닫으려는 찰나 현욱의 억센 힘에 의해 저지당했다.'“할 말이 없어? 할 말이 없어! 할 말이 없다고!”'결국은 그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변했다. 그녀가 힘없이 욕실 문을 잡고 있던 손을 떨어뜨리자 현욱이 물었다. 무척이나 잔인하고 냉혹한 목소리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밤새 그 새끼 상대해 줘서 힘이 없나 보지?”'“나, 피곤해요. 그만 좀 해요.”'“그러시겠지. 내가 밤에 집을 비우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매일 밤 못 다한 정욕을 하룻밤에 불살라야 했으니 얼마나 바쁘셨겠어?”'“나…… 창녀 취급하지 말아요.”'“뭐?”'힘없이 서 있던 하윤의 눈빛이 조금씩 살아났다. 자신이 지현욱이라는 남자 때문에 어떤 수모를 당하고 호영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서 왔는데, 이 남자가 자신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그를 바라보자 그는 입술을 비틀며 차가운 목소리로 비비 꼬아 가며 말했다.'“창녀 아니었던가? 옛날 말로는 창녀, 요즘은 호스티스라고 부르지, 아마?”'“내 본 직업이 호스티스가 아니었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아니, 모르겠는데? 어제 아침까지는 내 몸을 갈구하던 네가 오늘 아침까지는 다른 남자의 몸을 갈구해? 그거야말로 창녀가 아니고 뭐…….”'짝ㅡ'어두운 방 안에 그의 뺨에 닿은 그녀의 손에서 난 마찰음이 큰소리로 울려 퍼졌다. 그녀는 듣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모욕하는 지현욱의 독설에서 이제 그만 해방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