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1989년, 11월 16일. 뉴욕 브루클린.' “큭큭.”'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리사를 바라보며 도진이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리사의 낡은 아파트 앞에서 두 사람은 손을 꽉 붙든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웃어? 내 꼴이 우스워?”' 도진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넌 물에 젖어도 섹시하고 예뻐.”' 리사의 웃음소리가 아파트 앞에 위치한 공터에 울려 퍼졌다. 그곳은 늦은 밤까지 거리의 아이들이 농구를 하는 장소였지만 오후 내내 내린 비 때문에 텅 비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 마다 삐거덕 소리를 내는 반쯤 부서진 표지판을 제외하면 모두가 잠이 든 것 같이 조용한 거리, 농구 골대 옆을 버티고 서 있는 가로등은 희미하게 깜빡거리다 이내 완전히 꺼져 버렸다. ' “오늘도 잭의 패거리와 싸움 직전까지 갔었다며?”' 리사의 입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화제가 터져 나오자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도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 “그 겁쟁이 자식이 또 피했어. 마음 같아서는 그 자식을 반쯤 뭉개버리고 싶었는데!”' 리사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도진은 어둠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다.' “도진, 그러지 마. 잭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지금 내가 잭하고 싸워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거야?”' 화가 난 어투로 말하는 도진을 달래기 위해 리사는 그의 품안에 파고들었다. 비에 젖어 축축한 셔츠가 뺨에 닿았지만, 도진의 뜨거운 가슴과 세차게 뛰는 심장소리는 리사의 몸을 따스하게 데워주었다.' “화내지 마. 난 네가 다칠까 봐 걱정이 되는 것뿐이야. 나에게는 너뿐이니까.” ' 마지막 단어는 거의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리사는 도진의 품에 안겨 그와 처음 만났던 1년 전을 돌이켜 보았다. 뉴저지의 양부에게서 도망쳐 나와 브루클린에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던 그 어느 날 자신의 시선을 끌던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소년, 도진이었다. 매력적인 미소를 가진 그 잘생긴 소년은 금세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렸다. 비단 그것은 리사의 감정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져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고 양부에게서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준 도진은 리사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 “요즘, 이상한 꿈을 꿔.”' 리사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리자, 도진은 귀로 듣는다기보다, 가슴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음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