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지만, 어느 날 갑자기 머리 위로 투하된 폭탄은 이제 막 사회로 발을 내딛기만을 바라며 유유자적하게 살아오던 유수를 일대 혼란에 빠트렸다. 유수는 경악스러운 얼굴로, 자신에게 일대 폭탄을 투하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앉아 계신 꼬장꼬장한 노인네를 보며 파르르 손을 떨었다. ' 아무리 농담이 난무하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이건 농담치고는 너무 살벌했다. 아니, 이제 피어나는 꽃을 꺾는 것도 정도가 있지.' “에에에엑!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결혼이요? 그것도, 그런 새파란 어린놈하고 제가요?”' “그래. 결혼식은 최대한 빨리 잡을 생각이다.”' 유수의 얼굴은 날벼락을 맞았다한들 이보다 더 놀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일그러졌다. 차마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을 그대로 내뱉기엔 그녀의 할아버지는 지나치게 정정하셨고, 평화로운 앞날을 위해 유수는 절대 할아버지에게 밉보일 수 없었다. 그녀의 사랑스런 카드가 지갑 안에 고이 잠자고 있는 이상, 유수는 할아버지의 얌전한 손녀딸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 그럼에도 작금의 사태는 유수의 머리를 단번에 휘저어버릴 만큼 충격적이라, 저도 모르게 본모습을 잠시 잠깐 보이고 말았다.' 그에 할아버지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어리자 유수는 무릎 위에 올린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부여잡았다. 손에 식은땀이 차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재빨리 이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까를 고민해야 했다.' 여기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그녀보다 무려 5살이나 어린 녀석과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될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할아버지의 행동이 빠르다는 것을 지난 시간 수도 없이 겪어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할아버지의 하나뿐인 손녀딸이었다. 그런 손녀딸에게 이런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할아버지라니. ' 지금까지 그녀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만 같은 환영에 유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떴다. 아무래도 요즘 몸이 허해졌나 보다. 그게 아니고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꿀 리가 없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을 깨기라도 하듯, 할아버지의 단호한 음성이 그 뒤를 이었다.' “조금 있다 인사하러 올 테니까 미리 준비하고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