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6년. 늦은 가을.'한줄기 찬바람이 선창가를 휘몰고 지나갔다. 붉은 아침 해가 솟아올라 어스름했던 새벽 기운을 서서히 몰아내었다. 부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몇 대의 배에서 어부들이 서둘러 닻을 올리며 일하고 있는 모습이 운희의 경계 어린 눈에 들어왔다.'운희는 현재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청나라의 강녕부(江寧府)라는 사실을 방금 전에 알게 되어 기가 막혀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조선에서 이곳까지의 길이 대체 몇 백 리일까를 생각하니 온몸에서 기운이 저절로 빠져나갔다.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머릿기름이 발라져 곱게 단장되었던 그녀의 머리칼은 지난 며칠 겪은 풍상으로 온갖 먼지를 뒤집어쓴 탓에 헝클어지고 거칠며 억세졌다.'그녀의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운희는 이 빠진 도기 그릇으로 시장 상인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에서 물 한 사발을 떠서 거침없이 들이켰다. 허기가 채워질 리 없음을 알지만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고자 그녀는 맹물을 거푸 들이키며 배를 채웠다.'시끄럽고 마치 칭얼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낯선 청나라 사람들의 말투가 사뭇 귀에 거슬렸다. 청나라 해적에게 납치되어 낯선 이국땅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한 심한 분노가 그들의 어투 하나까지 거부감을 갖게 한 듯했다.'운희는 보름 전 평양에서 가까운 진남포에 마음을 달래려 바닷바람을 쐬며 모래사장에 섰던 일이 이런 엄청난 일로 이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래도 해적의 손아귀에서 도망치게 된 것은 거의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다시금 자신을 쫓고 있을지도 모를 해적을 생각하며 사뭇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해안가 민가의 빨랫줄에 널려 있던, 채 마르지 않은 청나라 의복을 훔쳐 내 갈아입은 것은 주인에게는 매우 미안한 일이었지만 운희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어제 낮에도 그녀를 납치했던 해적 일당 중 한 명이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갔다. 해적 일당들은 운희를 놓치게 되자 해안가에서부터 시장골목 구석구석까지 이 잡듯 그녀를 찾기 위해 들쑤시며 돌아다녔다.'울 기운도, 눈물도 모두 바닥이 난 듯 메말라 버렸다. 그녀의 얼굴에서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