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이 예쁘게 퍼져 주위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시각, 근하는 퇴근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다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 도시에 내려와서 좋은 점이 있다면 서울에서는 잊고 살았던 자연적인 현상을 아무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볼 수 있다는 점이다.'아직 공해에 찌들지 않은 이 도시는 매연에 찌들어 한 겹 씌워진 서울과는 다르게 비가 내려도, 밤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또 지금처럼 노을이 지는 것도 그냥 그 본래의 느낌과 색을 느낄 수 있었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던 근하는 오늘도 서울과 자신의 집 방향을 번갈아 바라보며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밤이 너무 길었다. 서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닌데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거리에 사람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홉 시가 넘으면 밖에 나다니는 사람을 세는 것은 더욱 힘이 들었다. '조용하고 한적해서 갑갑함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도시는 근하에게 작은 두통거리였다.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란 근하는 가끔 다니던 여행과 군대를 빼고는 이렇게 오래 서울을 떠나본 일이 없었다. 더구나 서울의 네온사인과 밤의 향연을 즐기던 그에게 이곳은 작은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차를 몰아 화려한 서울의 야경 속으로 묻혀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없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사람의 온기가 없는 집은 휴식과 편안함을 주기보다는 그저 잠을 자는 공간에 불과했다. '자신이 피워 물었던 담배 연기가 바람에 흩어지는 것을 보며 한참을 고민하던 근하는 힘차게 기어를 넣고 출발을 서둘렀다. 반기고 기다리는 이는 없지만 내일을 위해 집으로 핸들을 꺾었다. 입매를 굳게 다문 그의 잘생긴 얼굴이 해거름 빛을 받아 붉게 타올랐다. '서른셋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학교 이사장이란 직책은 근하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조직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 혼자 일을 하던 그가 이곳에 내려온 이유는 아버지의 당부 때문이었다. 생전에 계실 때부터 근하가 학교 일을 맡길 바라셨던 아버지는 기어이 유언으로 근하가 학교 재단 일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셨다. '학교 재단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는 더 이상 일을 봐주지 않겠다는 누이의 등쌀에 못 이겨 석 달 전에 겨우 이곳으로 내려온 근하는 이 도시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이놈의 작은 도시는 시내 구경을 하는데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날이 오 일에 한 번 서는 장날이어서 서울에서는 보지 못한 시골 재래장터 구경이 그나마 한 십여 분? 시내를 차로 한 바퀴 돌자 바로 나오는 논밭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