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단하…… 왜 이 사람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모르는 사람처럼 잊혀졌으면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안면 신경섬유 몇 가닥을 잘라내면 안면 홍조가 제거되듯이 최면을 걸어 그 사람과의 추억을 잘라낼 수만 있다면. 아니 제발 이 울렁울렁한 증상만이라도 사라지게 된다면 좀 더 편하게 숨 쉬고 살 수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을 만나볼까? 만나면 나아질까? 돌았어! 그래서 뭘 어쩌겠다고. 어차피 상처받을 것이 뻔 한 짓을 해서 스스로를 벌주려고? 그만하자. 어차피 안고 살아야할 죄 값이라면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괜찮아. 잊혀지겠지. 세월이 약이라잖아.”'늘 그랬듯이 가슴이 미어질 때마다 주문처럼 중얼거리던 독백이 인희의 입에서 스스로를 달래듯 흘러나왔다. '“같은 하늘아래 살면서도 소식조차 물을 수 없다니…….”'이런! 금방 잊기를 소원하다가 그 생각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까. 지쳐 버렸다. 생각을 털어내듯 급하게 고개를 들었던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시선을 내렸다. 현기증,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때문이 아니라 한 남자를 가질 수 없음에 현기증이 났다. 사랑이 극심한 고통 뒤에 찾아오는 거라면 아파해야 할 것이 없어질 때까지 상처받아야겠지. 그 해 봄 이후, 깨어있는 시간이면 오직 일에 매달리는 것으로 그의 생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애써 잊으려하지는 않았다. 그저 감정이 소진할 때까지 방치해 둘 뿐. 처음부터 헤어짐을 예측했지만 너무도 갑자기 찾아든 충격을 소화하기도 전에 치명적인 사건이 이별과 함께 그녀를 벼랑 끝으로 떨어뜨렸다. 그것도 단 하루 만에 그에게서 어떤 언질도 듣지 못한 채 끝나버린 온전히 상처로 남은 사람.'‘푸우…… 몸이 또 기억의 저장고를 열었네. 하지만 이번 봄은 달라. 어쨌든 죽지 않고 홀로서기를 시도했으니까. 여름이 되기 전에 여기서 자리 잡으려면 바쁠 거야. 그럼 가슴에 느껴지는 이상한 통증도 잊히겠지.’ '상념에서 빠져나온 인희는 최소한의 살림살이로 구색을 갖춘 실내를 돌아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집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하던 중에 마침 이 집을 소개받았다. 한옥이라 건물전체를 리모델링해야 했지만 한옥 고유의 멋은 그대로 살려서 제법 운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보니 제법 집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방과 방 사이의 마루를 거실로 개조하느라 트여있던 앞쪽에 벽을 올린 후 큰 창과 현관문을 설치하고 건물 외벽에는 황토 흙을 발라 주위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더했다. 이 집을 수리하면서 느낀 기대와 설렘은 그녀에게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에너지를 만들어 주었다. 죽은 줄 알았던 삶에 대한 열정을 되찾은 것처럼 한동안 들떠 있었다.'“혼자 살아가려면 이 정도론 부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