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바람이 불었다. 머리를 맞댄 채 얽혀있는 지붕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자 나뭇가지들이 사르륵 몸통을 털며 꽃비를 흩뿌렸다.'“웅아, 내 모습이 어떠하냐?”'3월, 봄을 알리는 매화꽃 축제의 마지막 날. '현월국의 둘째 왕자 가율의 뒤를 쫓고 있던 덩치 큰 사내는 갑자기 들려오는 맑고 카랑한 목소리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웅이라 불린 사내에게서 서너 걸음 떨어진 거리. '아직 앳된 태를 완전히 벗지 못한 소년이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오뚝한 콧날과 그린 듯 선명한 입술,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우물처럼 깊고 검은 눈. '11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미완(未完)이지만 어린 가율의 모습은 보는 이의 머릿속을 아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바라보는 눈빛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단단한 결기마저 느껴져 고귀한 피가 섞인 탁월한 태생임을 말해주는 듯했다.'“내 말을 못 들었느냐? 내 모습이 어떠냐고 물었다.”'금사로 수놓인 검푸른 당의를 입은 가율이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는 웅의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잠시 주인의 용모에 넋을 잃고 있던 웅은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미천한 소인이 무엇을 알겠습니까마는…… 훌륭하십니다.”'대답하는 웅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럼 되었다.”'흡족한 대답을 얻었는지 어린 왕자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웬일인지 자박자박 디디는 그의 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가율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가슴에 달린 주옥장식이 흔들렸다. 걸음을 빨리하면 빨리 할수록 찰랑찰랑 한없이 맑고 경쾌한 소리가 귓전을 두드렸다.'“왕자님, 좋으십니까?”'잔뜩 흥이 난 가율을 향해 웅이 물었다.'“좋다. 좋다마다. 어마마마께서 이리 따로 부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 내가 어찌 아니 좋을 수가 있겠니.”'“발밑을 조심하십시오. 그러다 넘어지겠습니다. 애써 차린 옷차림이 흐트러질까 걱정됩니다.”'“걱정마라. 그런데 웅아, 어머니께서 나를 미쁘다 하실까 모르겠구나. 무엇을 하면 좋아하시려나?”'발걸음을 멈춘 가율이 웅을 돌아보며 물었다.'“그동안 읽었던 서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니면…… 왕자 궁에 새로 만든 정원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좋을까?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지? 너무 오랜만에 뵙는 것이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