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아, 나 졸린데 네 어깨에 기대도 돼?”'''준영의 말에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던 재민이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언제 나한테 허락 받은 적 있냐?”'“아니. 아마도 없을 걸?”'“그러니까 어울리지 않게 물어보지 말고 그냥 너 편할 대로 해.”'“그럼 나야 고맙지.”'''평소답지 않게 준영이 마치 착한 아이인 듯 굴자 재민이 떫은 표정을 지었다. 재민의 허락이 떨어지자 준영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팔짱을 끼듯 두 손으로 그의 한쪽 팔을 붙들었다. 그냥 기대고 있을 뿐인데 마음마저 든든한 기분에 준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평소 때에도 이렇게 순순히 그녀의 요구를 받아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래도 이해해야지 어쩌겠는가. 자신이 여태껏 심하게 굴고 있다는 것은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하지만 그녀 역시 피해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가 있었다. 하도 어릴 때라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민을 만나기 전까지의 그녀는 착하고 이해심 많은 예쁜 어린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천사 같던 옛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는 말괄량이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성격은 어떻게 변했는데? 밝고 깨끗했던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종종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 이기적인 면모만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건 누구의 탓인가. 전부 다 지금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있는 남자 때문이었다.'''“그렇게 좋냐?”'''준영이 얼굴을 그의 어깨에 비비적거리며 웃자 재민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응. 이러고 있으니까 편해.”'''준영이 하도 그를 향해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자 재민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도대체가 쑥스러움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지겹다는 표정에도 상관없다는 듯 웃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려니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다행스럽게도 고혈압으로 쓰러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울화병이 들것 같았다. 차라리 고혈압 증세가 약하게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조금이라도 덜 들볶이지 않겠는가.'하지만 정형외과 의사로 있는 큰 아버지의 진찰에 의하면 스트레스 수치가 조금 높기는 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이라니 준영에게서 빠져나갈 구멍이 차단된 셈이었다.'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는지 준영이 고른 호흡을 하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있을 때와는 달리 너무도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모습에 재민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거렸다.'''“확 밀치고 싶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