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약간 뾰로통한 얼굴로 미우 옆에 서서 미우가 고르는 립스틱을 바라보았다. 실로 얼마 만에 립스틱이란 것을 사 보는지, 마냥 소녀처럼 설레는 기색의 미우가 우주에게는 주변의 다른 여대생보다 더 소녀 같아 보였다. 엄마, 화장 좀 하고 다녀, 노래를 부르던 우주였지만 아직도 인욱에게 약간 ‘삐쳐 있는’ 상태였던지라, 뻔히 인욱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화장품을 고르는 엄마를 고운 눈으로만 볼 수가 없었다.'그래도 미우가 얼토당토않은 색깔을 고르는 것만은 참기 어려웠다. 이왕 예쁘게 보이고 싶다면 정말 예쁘게 보여야지, 이게 뭐냔 말이다!'“엄만 정말이지 센스 꽝이야! 이게 뭐야!”'“이, 이상해?”'“이상한 정도가 아니야! 촌스러워!”'미우는 수수한 색깔의 분홍색 립스틱을 손에 들었다가 우주의 타박에 완전히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애초에 립스틱 같은 거 사지 말 걸 그랬나, 괜히 인욱이 호텔 레스토랑 갈 거니까 예쁘게 하고 나오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말이다.'“그럼 사지 말까?”'내가 화장은 무슨. 미우는 약간 의기소침해져서 들었던 립스틱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도 부담스러웠다. 원래 화장이란 건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미우였다. 몇 안 되는 친구들 결혼식에 두어 번 참석했을 때, 차마 맨얼굴로 갈 수가 없어 양희의 도움을 받아 화장을 몇 번 해 보았을 뿐이었다. 사고가 나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양희는 대단한 멋쟁이였다. 언제나 자신보다 더 멋을 잘 부리던 시어머니가 저렇게 생기를 잃고 집 안에만 박혀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사실 마음 아픈 일이었다.'“아, 좀! 언제까지 할머니 십몇 년 된 구닥다리 화장품 쓸 거야! 할머니는 빨간색 립스틱 그런 거 잘 어울릴지 몰라도 엄마는 아니란 말이야!”'우주는 짜증을 내면서도 어느새 다른 립스틱을 이리저리 뒤지면서 미우에게 어울릴 법한 것을 고르고 있었다. 미우는 우주의 곁에 멀뚱하게 선 채 우주가 고르는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남자. 다시 예뻐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만든 남자. 그 남자가 인욱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율하며 젖어 든다. 이렇게 대책 없이 끌려 가다가 헤어져야 할 때가 오면 어떻게 감당하나, 두렵고 막연한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그에게 이끌리는 감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나중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그가 이끄는 대로 아무 생각 없는 척, 그렇게 가고만 싶었다. '그래서 우주와 양희를 떠올릴 때면 늘 미안해지는 미우였다.'“이건 어때?”'우주는 오랜 시간을 뒤진 끝에 마침내 하나를 골라 미우에게 불쑥 내밀었다. 연하지도 진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핑크빛 립글로스였다.'“아무래도 엄마는 피부가 약하니까 립스틱보다는 립글로스가 나을 거야.”'“두 개가 달라?”'“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