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비는 그쳐있었다. '왜 이렇게 갈증이 나는 거지.'여진은 메말라버린 입 안과 입술을 혀로 축이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푸르스름한 여명이 방안을 밝히고 있었다.'여진은 허리에 둘러져 있는 우빈의 팔을 치우고 살며시 일어나 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일어나 씻고 싶었지만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뻐근하게 아파왔고 민감한 그곳은 쓰라리고 아팠다. '여진은 살며시 이불을 들추고 침대시트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어머니에게 들은 것처럼 출혈의 흔적을 찾았지만 시트는 깨끗했다. 여진은 잠시 충격을 받아 멍해졌다.'‘어머니,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니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뭐가 잘못된 것이니까. 난 진정 순수한 처녀인데.’'여진은 머뭇머뭇 시선을 돌렸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우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밤 이 사내의 품에 안겨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한순간의 꿈인 것만 같았다. 광풍처럼 몰아쳤다 사라져버린 한바탕의 꿈인 것만 같았다.'혈흔은 자신이 당당한 처녀라는 것을 증명하는 자랑스러운 것인데, 그것이 없다니.'그 혈흔을 우빈에게 은연중에 슬쩍 보여주며 당당하게 잘난 척 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어찌 이리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이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여진은 물을 마시러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누웠다.